교통사고로 발목 인대가 파열되고 발가락뼈가 으스러져서 두 발을 수술하고 꼬박 두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수술 직후에 의사는 침대에서 꼼짝 말라는 처방을 내렸다. “조금이라도 발을 바닥에 내디디면 괴사가 생기는 부위를 다치셨어요. 지금 발을 쓰면 다시는 못 걸을 수 있어요. 2주 동안은 화장실도 가면 안 돼요.”
못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놀라서 2주 동안 부기가 덜 빠진 두 다리를 머리보다 높게 들고 침대에 누워서 24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눕기는 내 취미이고 특기였지만 종일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것은 온몸이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누워서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방광이 신호를 보내면 간병인이 대야를 내 엉덩이 위치에 놓아주고 병상 커튼을 닫았다. 뇌는 요의도 지배해서 처음에는 소변이 안 나와서 참았다. 하지만 계속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츰 적응했지만, 매번 의식을 누르고 누워서 방광을 비우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큰 볼일이었다. 차마 누워서 거사를 치를 수는 없었다. 열 발걸음 정도 떨어진 화장실에 가는 일은 히말라야 등반을 떠나는 것처럼 비장했다.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 앉아서 화장실로 이동하고, 변기에 도착해서도 앉았다 일어서는 데 안간힘을 쓰는 번거로운 절차를 매일 한 번씩 치렀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했던 단순한 일상생활이 도전적인 과제로 여겨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두 달 후에 깁스를 풀면 다시 괜찮아지리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미래에 보장된 ‘명확한’ 희망의 끈 덕분에 사소한 일상적 분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 해피 엔딩이 된다. 하지만 노화로 인한 질병은 다르다. 회복이나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질병이 끈질기게 개입한다. 노화로 생긴 병은 도미노 같다. 한번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먼저 근육이 무너지고 그다음에는 인지력도 무너진다. 살아 숨 쉬고 보호자가 동의하는 한 연명 치료를 받지만, 그 상태를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심장이 뛰고 숨을 내쉰다면 의학적으로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한다면 삶에서 전격 소외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뜨는 해를 맞이해야 할까? 이는 나처럼 홀로 늙어가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화두다.
미치 앨봄의 에세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는 루게릭병으로 죽음에 매일 조금씩 다가간다. 모리는 모두가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죽을 거란 걸 알면 언제든 죽을 준비를 할 수 있으며 사는 동안 자기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 수 있거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상 국제영화상을 받은 영화 〈아무르〉는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 노부부 이야기다.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2023년 기준으로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불법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노부부는 생을 마무리하는 문제와 만난다.
단정하고 우아한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안느가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조차 못 들지만, 남편 조르주는 아내를 살뜰히 돌본다. 그도 노인이다. 거동이 불편해서 자기 외에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버겁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상황은 불편하고 위태롭다.
노부부가 보내는 하루는 이렇다. 아내에게 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명민한 아내는 이제 더는 없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 언어를 잃어서 짐승의 언어처럼 단순한 의성어로 불편함을 전달하는 아내를 남편은 고통스럽게 본다. 아내의 상태는 빠르게 나빠진다. 처음에는 대화도 했지만, 곧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있다.
노부부 사이에는 함께 보낸 세월 속에 쌓인 책임감, 연민, 사랑, 동지애 등이 섞인 연대감이 있다. 남편은 아내가 치르는 신체적, 정신적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주변 사람들은 노인의 쇠락을 공감하기엔 너무 다른 세계에 산다. 젊은이들은 노화의 갑작스러운 횡포를 재앙으로 본다. 자식을 비롯한 가족과 지인, 간병인도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하고 묻는다. 위로와 염려를 담은 질문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폭력적이다. 아픈 사람은 하루아침에 약자의 위치로 추락한다. 보편적 ‘정상성’에서 이탈한 사람이 된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몇 달 동안 잘 걷지 못해서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건널목을 건널 때도 중간쯤 가면 보행자 신호가 바뀌었다. 보행 신호는 건강한 사람의 보행 속도에 맞춰져 있음을 깨달았다. 내 두 발로 걷지 못하는 상태는 단순히 불편한 상태가 되는 것 이상이다. 몸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으면 모든 것에서 소외된다.
존재 자체에 회의감이 들고 감정도 불편한 몸에 지배받는다. 한동안 나는 우울의 포로였다. 그때의 경험 이후 나의 가장 강렬한 소망은 부자가 되는 것도, 젊어지는 것도 아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곱게’ 죽는 것이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날까지 내 몸을 자유롭게 쓰며 정신이 또렷하기를 갈망한다. 젊을 때처럼 감각이 민첩하지 않더라도 몸을 움직여 밥을 해 먹고, 두 발로 걸어서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안느에게 뇌졸중이 예고 없이 들이닥친 것처럼 질병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노인성 질병은 진행하는 속도를 늦출 순 있지만, 완치란 없다. 퇴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과연 치료일까? 만일 치료라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치료일까?
안느는 잠깐씩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격렬한 내적 고통을 겪는다. 남편에게 짐이 되는 고통,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지 못한 고통. 안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에 마침표를 찍어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조르주는 베개로 안느의 얼굴을 덮는다. 안느는 경련을 일으키며 버둥대다 잠시 후 고요함 속으로 들어간다. 영원히.
나는 전적으로 조르주의 편이지만, 죽음의 결정권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조르주의 남은 생은 어떻게 될까? 아내에게 마지막 선물로 공인되지 않은 죽음을 준 남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죽음의 결정권을 멋지게 행사한 선구자가 있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는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끌고, 노년에도 영화를 만든 현역이었다. 그는 2022년, 91세의 나이로 삶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을 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보도에 따르면 가까운 가족 중 한 사람이 “그는 아픈 게 아니라 삶에 몹시 지쳤다. 그래서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것이 알려지는 게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고다르 감독이 영면한 후에 프랑스에서는 조력 자살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고다르는 2014년 칸 영화제 기간에 “너무 아파서 휠체어에 앉아서 끌려 다니고 싶지 않다”라고 스위스 TV에 출연했을 때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다. 감각과 운동 신경이 작동하지 않을 때 삶의 낭떠러지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고 싶지 않다. 그때 가서는 삶의 끈을 붙잡고 늘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은 그렇다. 치료란 이름으로 실행되는 여러 가지 연명 치료는 심장이 멈추는 것을 막을 뿐이다. 뇌는 이미 정지했지만, 심장만 뛰는 생리적 생존이 전혀 반갑지 않다.
존재 자체만으로 힘을 주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를테면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며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부모의 경우는 다르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란 세상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엄청난 힘이 되는 존재다. 하지만 노령에 나처럼 혼자인 사람은 그저 누워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할 이유가 없다. ‘나를 돌볼 수 없으면 어쩌지?’ 막연한 두려움이 가슴 한구석에 있었는데, 고다르 감독이 대안을 제시했다. 삶을 마감하는 시기를 직접 선택한다면, 삶도 정리하고 죽음도 준비할 수 있으니 불안도 잦아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