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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May 08. 2024

갱년기 싱글맘과 사춘기 아들이 사는 사는 법

<우리의 20세기>를 통해서 본  

독립잡지를 만들 때 싱글 대디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이혼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린 아들을 혼자 돌보느라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상황을 학교에 공개했다. 많은 고민 후였다. 이것이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아이가 이따금 ‘엄마 없다’는 놀림을 받아서 싸우곤 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찢어져요. 초등학교 저학년은 엄마 없다는 말을 혼자 생각해낼 수 없거든요. 부모들의 왜곡된 시각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거죠. 저처럼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라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이가 말썽을 부리면 ‘부모가 둘 다 있어서 그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애들은 원래 그러면서 큰다’고 말한다. 반면, 한부모 가정의 아이에게는 ‘엄마가 없어서 그래, 또는 아빠가 없어서 그래’라고 말한다. 


한부모 가장이라 마음 한구석이 ‘내 탓’ 덫에 걸려 있다면 근사한 얼굴 주름을 보유한 아네트 베닝과 그레타 거윅이 출연하는 〈우리의 20세기〉에서 지혜를 빌릴 수 있다. 마흔에 늦둥이 아들을 낳아 키우는 싱글맘과 사춘기 아들이 사는 이야기다.      


55세 도로시아는 세계대전 때 공군 파일럿이 되고 싶어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서 파일럿 대신 설계사무소에 입사한 최초의 여성이 된다. 남자들이 우세한 직업 세계에서 실력으로 버틴 그녀는 생활력도 있고, 집수리도 작업복을 입고 직접 한다. 이처럼 혼자서도 씩씩한 사람이지만 열다섯 살 아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대공황을 겪은 궁핍한 세대인 엄마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아들은 번번이 충돌한다. 음악을 들을 때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예쁜 음악을 들으라는 엄마의 의견에 아들은 예쁜 음악은 사회의 부정부패와 정의를 감춘다고 대꾸하며 불협화음이 가득한 하드록을 듣는다. 사춘기 아들과 대화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엄마는 폭발 직전의 화산 같다. 아들은 엄마에게 따진다. “슬프고 외로우면서 왜 맨날 괜찮대?” 아들도 엄마 앞에서 점점 침묵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엄마는 아이가 불행해질까 봐 두렵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도로시아는 아들이 자기보다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혼자 아이를 돌보면 그 무게에 짓눌려 외로움과 자책감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도로시아도 이번 생이 처음이고, 엄마도 처음이다. 도로시아는 자기만의 해결책을 찾는다. 위층 세입자 애비와 아들의 여자 사람 친구 줄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남자를 키우려면 남자가 필요하지 않나요?” 줄리가 묻자 “너면 충분해. 제이미를 아끼고 잘 알고 있으니 경험을 나눠줘”라고 도로시아는 말한다. 공통 관심사도 없고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데 단순히 생물학적 성만 같은 사람은 도움이 안 된다고 도로시아는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제이미를 잘 알고, 제이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험을 나눠주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도로시아의 믿음은 절대적으로 옳다. 잘 자란 사람이란 자기에게 부당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참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돕는 사람, 그 반대 상황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도로시아와 반대로 홀로 아이를 키운 아빠 이야기가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스칼 메르시어의 또 다른 매력적인 소설 《레아》에는 딸이 여덟 살일 때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딸을 키우는 아빠 마티진이 등장한다. 어릴 적 바쁜 아버지와 교감하지 못한 채 자란 마티진은 딸과 둘이 갑자기 남겨졌을 때 당황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딸이 좋아할 만 한 것을 무조건 해주는 것이다. 그는 딸이 바이올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도록 무슨 일이든 한다. 스타 대학교수였지만 파가니니 바이올린을 사기 위해 연구비까지 횡령할 정도로 자식에게 그릇된 헌신을 한다. 


마티진은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지만, 건강한 애착을 배우지 못해 감정 문맹자로 자랐다. 그 결과, 딸에게도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알려주지 못한다. 딸의 것인지 자기 것인지 모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일시적이고 강렬한 자극에 이끌려 자기 삶까지 파괴하면서 헌신한다. 이 헌신이 오히려 딸의 삶도 파괴한다. 아빠가 딸의 불안과 초조를 다른 사람과 공유했더라면 어땠을까? 딸의 삶도 아빠 자신의 삶도 구원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부재 상황에서 ‘내 탓’ 덫은 강박에 가까운 군더더기다. 아이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곁에 있는 부모와 가족 외에도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며 자라니까.    

  

양육 연구에서 엄마와 아빠에 관련된 주제가 다르다고 한다. 엄마 양육은 모자간의 애착 관계, 엄마의 정신 건강 등 상호작용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주로 연구된다고 한다. 반면, 아빠가 양육에 참여했을 때의 결과를 연구한 내용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보다는 주로 아빠의 부재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연구 주제가 쏠려 있다고 한다.주) 아이에게 무관심하더라도 아빠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그릇된 믿음은, 그러니까 사회적 통념이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이런 선입견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감정 문맹인 무관심한 아빠 혹은 아빠를 대신할 남성이 아닌, 감정을 잘 읽고 토닥여주는 ‘사람’이 아이에게 필요하다는 도로시아의 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모으면 된다도로시아 집의 세입자 중 한 사람인 애비는 20대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자궁경부암으로 투병 중이다. 도로시아는 제이미에게 애비가 병원에 가는 날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제이미는 그녀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네가 나름대로 해봐. 못하겠더라도 시도는 해봐야지. 남자들은 여자들을 위해 뭔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해결 못하는 것들도 있어. 그냥 옆에 있어줘. 남자들은 왜 그런지 그걸 못하더라.”


엄마 말대로 열다섯 살 제이미는 정말로 애비 옆에 있어준다. 아픈 사람 곁에 머물며 시간 내서 귀를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인 것을 체득한다. 제이미와 애비는 생물학적 성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밀해진다. 제이미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고민을 애비에게 말하며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앞으로 출산이 힘들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애비가 눈물을 흘리자 제이미는 여성의 몸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친구 줄리가 임신을 걱정하자 임신테스트기를 사다 준다. 아빠 소식이 끊긴 지 10년도 넘어 아빠 그림자밖에 기억이 안 나지만, 그는 엄마와 주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알아가고, 공감을 주고받는 법을 배워간다. 제이미는 사회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양육의 목표는 하나다. 독립적이고 자기 몫을 잘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도로시아는 혼자라서 힘든 게 아니라 인생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힘들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사이다 같은 위로를 남긴다.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져. 그래 봐야 또 힘들어지지만.” 



주. 김재원, ‘아빠 양육, 얼마나 중요할까?’, 〈정신의학신문〉, 2020년 4월 19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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