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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Feb 12. 2020

성 정체성의 다양성

영화 <사적인 나의 여자 친구>를 통해 본 성 정체성


성 정체성 혼란 

 

우리는 태어나면서 생물학적 성이 정해진다. 그 생물학적 성에 따라 남자, 여자란 성별sex로 살아가도록 기대된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라는 말을 들으면서 젠더gender, 즉 사회에서 성역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사람답게가 아니라 생물학적 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로 나눠지는 문화 가치에 복종하도록 길들여진다. 이런 사회적 규범에서 어긋나면 비난의 연대가 거국적으로 형성된다. 


트랜스젠더는 가지고 태어난 생물학적 성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이다. 정신적으로 살고 싶은 성으로 수술을 받는다. 남자는 여자로 살기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로 살기를 원할 경우이다. 이들은 평생 육체와 정신이 불일치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대부분 어릴 때 이런 불일치를 스스로 인지한다고 한다. 트렌스젠더는 단순히 성취향sex oritentation의 문제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지만 자신은 스스로 여자로 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남자로 본다. 환장할 노릇일 것이다. 자신의 육체 때문에 성을 다르게 보이는 일이라니. 


얼마 전 한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합격을 했지만 학생들이 반대해서 입학을 포기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성별을 바꾸기까지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도 여성으로 바꾸고, 여대에도 합격했다. 즉 사회 공공기관은 트랜스젠더를 수용하는 분위기여서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그 후 학생들이 남자가 왜 여대에 오냐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여대에 다니면서 여자로 산다는 건 여자들과 어울리고, 그 대학에 소속된 어울릴 여자들이 자신을 수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법적으로 여자가 되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지만 그가 나아갈 사회에는 아직 성 정체성에 대한 편견이 견고해서 넘기 힘들다는 걸 보여주었다. 뛰어넘기 힘든 장벽에 마주선 그는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이고, 어쩌면 평생 혼란과 우리는 모르는 고통 속에 던져질 것이다. 


성 정체성 반란 


영화 <나의 사적인 여자 친구>는 성 정체성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이야기이다. 공식적으로 '의상도착증transvertism'을 겪는 남자와 그 남자를 여자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여자의 사랑이 가능할까. 의상도착증이란 말에는 이미 '병'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함축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 옷을, 여자는 남자 옷을 입고 싶어 하는 걸 의상도착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규정했는가? 남자는 남자 옷을, 여자는 여자 옷을. 바로 우리 자신이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녀의 옷 구분은 없었고, 인도에는 지금도 신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기 위해 남자가 여신의 옷을 입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계몽주의 이래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사회규범을 만들고, 우리는 그 규범에 따르도록 훈련되어 왔다.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을 보면 우리는 틀렸다고 말해도 괜찮은 권리를 인정받았다고 착각한다. 


<나의 사적인 여자 친구>에서 남자인 다비드(로망 뒤리스) 아내 로라가 죽은 후 잊고 있었던 의상도착으로 돌아간다. 아내의 죽음 후 상실과 결핍이 누르고 있던 그의 본성을 일깨웠다. 다비드의 의상도착을 반기는 이는 다비드 아내의 절친인 클레르(아나이스 드무스티어)이다. 클레르는 로라와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고, 우정을 넘어서 사랑을 느꼈다. 사춘기 시절을 겪었다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나보다 남자 친구를 더 좋아하고, 시간을 더 많이 보낼 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기억하는가. 로라가 결혼할 때 클레르는 실망과 질투를 느꼈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감정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클레르 역시 결혼해서 남편과 사이좋게 살고 있다. 


성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시선 


하지만 로라의 죽음 후 다비드와 클레르 두 사람 모두 로라의 부재를 함께 경험한다. 로라를 사랑하는 두 사람은 로라에 대한 추억, 로라와 함께 한 경험에 대한 그리움으로 친밀해진다. 로라가 죽은 후 다비드는 여장을 하기 시작하고, 여장을 하는 다비드에게서 클레르는 로라의 그림자를 본다. 로라의 남편인 다비드에게 느꼈던 질투를 보상받는 것 같았다. 클레르는 로라와 함께 했던 일을 다비드와 함께 한다. 함께 쇼핑하면서 서로의 옷을 골라주고, 영화 보고 밥 먹으면서 수다 떤다. 클레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비드인지 로라인지 문득문득 혼란스럽다.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고 두 사람 모두 정체성 혼란에 빠진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지점은 깊은 감정적 교류를 바탕으로 한 공감에서 비롯된 친밀감이다.


두 사람이 속한 사회는 우리가 익숙한 사회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는 이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질서이다. 그 외의 선택지는 경악과 충격을 준다. 비밀은 계속될 수 없고 밝혀진다. 클레르와 다비드는 처음에는 정체성 혼란에 저항한다.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공고한 기존 질서에서 잘 살아왔고, 내면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주변의 놀람과 비난에 공포에 질린 클레르. 클레르보다는 조금 더 용감한 다비드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긴다. 다비드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비드를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클레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인정한다. 


영화는 여러 가지 일을 겪은 두 사람이 결국 서로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영화를 보면서 부러웠다. 허구지만 이런 담론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감탄했다. 영화와 현실은 물론 다를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현실에서는 몇 십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지치고, 두려움에 떨 것이다. 우리의 경직된 성 정체성에 대한 시선이 말랑해지지 않는 한 이들의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비난을 보내기 이전에 비극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가 절실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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