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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이 Jun 14. 2018

야채죽 이야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배가 아픈 평범한 토끼 한 마리가 있었어요. 평범한 편의점에 가서 평범한 야채죽을 하나 샀지요. 토끼는 야채죽의 뚜껑을 열고 전자레인지에 1분 10초 동안 데웠어요.  하지만 전자레인지에서 나온 야채죽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소리도 지르고 뛰어다니기까지 했죠. 네, 어지간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죠. 야채죽은 열심히 떠들었고 과학자들에게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야채죽은 여러 가지 실험도 많이 받았고 대화도 꽤나 잘 할 만큼 말솜씨도 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채죽이 명랑하게 외쳤습니다!

"여기서 나가야겠어!"

"왜 나가려고? 나가서 뭐하게?"

"몰라!"

"너 네가 뭔지는 아니?"

"모르지! 그런데 난 여기 있기 싫어! 뭘 하고 싶은진 몰라도 뭘 하기 싫은지는 알아. 그거면 됐잖아."

그리고 야채죽은 과학자를 아주 세게 꼬집고 도망쳤습니다. 죽이 넘치는 게 느껴졌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야채죽은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고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뭐가 되든 상관없어요! 야채죽은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리고 아주 멀리멀리 갈 거랍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어디로 도망칠 건데? 어떻게 할 건데? 싫어하는 이유는 정확히 뭔데? 그런 질문들을 품느라 더 견디고 견디기만 했었다.

 그래서 너는 뭐가 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든 뛰어가 볼 생각이다. 운동장처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와도 좋다. 가만히 앉아 밑도 끝도 없는 질문들을 견딜 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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