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 완숙?
한국에 돌아오고 8개월 동안 9kg이 쪘다.
쇼핑을 지극히 못하는 나는 옷을 사는 대신, 옷에 내 몸을 맞추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식단. 옷 대신 다이어트에 필수인 계란 쇼핑을 했다. 그렇게 나에게 계란은 하루에 세 번, 부모님보다 더 자주 보는 존재가 되었다.
미처 계란을 삶아 놓지 못한 어느 날, 소심한 반항으로 인간의 사랑이 조금 첨가된 편의점 계란을 먹기로 했다. 너무 맛있어서 계란 4개를 순식간에 흡입하고 나도 모르게
“병아리가 안 되어줘서 고마워!”라는 이기적인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 한 달간 매일 본 탓일까, 갑자기 이 매끈한 동글이의 입장이 궁금해졌다.
‘너는 찜질방의 일인자 구운 계란이 되고 싶었을까, 편의점의 2+1 주인공 반숙란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면 나의 식단 1등 공신 삶은 계란이 되고 싶었을까?’
‘아, 병아리가 되고 싶었겠구나…!’
2+1으로 산 5번째 반숙 계란은 차마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병아리가 되지 못한 계란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병아리가 되고 싶었으면 알을 깨고 나왔어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 의지박약 한, 병아리가 되지 않은 존재가 내 다이어트의 필수 공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맞다, 나는 극 T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너는 적어도 병아리가 되고 싶은 확고한 목표가 있었겠지?’라는 씁쓸함의 소금이 씹혔다.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때 목표 중 하나는 엄마가 기뻐하실 전교회장 당선이었다. 중학교 때는 아빠가 원하시는 고등학교 입학, 고등학교 때는 사회가 원하는 좋은 대학교 입학이 목표였다. 감사하게도 결과적으로는 다 이루었다. 하지만 전교회장 이후 중학교부터는 반장도 하지 않았고, 대학교 졸업은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전공과 상관없이 동기들이 말하는 그냥 좋은 회사 취직이 새 목표가 되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 구운 게 좋다고 하면 구운 계란, 촉촉한 걸 원하면 반숙 계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회사가 원하는 가장 빠르게 익는, 계란 프라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다.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 주면 프라이가 되는 계란의 운명 (물론 그것도 깨트리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그동안 나는 어렸을 때부터 관성적으로 누군가에게 목표를 말해달라고 결정권을 맡긴 채 그에게 깨지기 위해, 그의 입맛대로 요리되기 위해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병아리가 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면서.
혹시 어떤 계란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인가? 어떤 병아리가 될지는? 나는 어떤 병아리가 되고 싶은지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계란 프라이가 되는 것이 내 목표는 절대 아니다!
남이 밖에서 깨트려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안에서 스스로 깨고 나오자
아, 참고로 덕분에 두 달 동안 결국 9kg 뺐고, 계란은 무정란으로 잘 먹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