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지금 사야 돼?
두바이는 기름과 자동차는 싼데 택시비는 비싼 희한한 나라다. 오늘 두바이로 파견된 친구가 어떤 차를 살지 물어보길래 2년 동안 2번의 차를 샀던 경험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차에 대해 더 무지했다. 내가 아는 건 SUV는 큰 차라는 정도? 낯선 땅에서 혼자 차를 구매할 엄두가 안 났지만, 코로나가 풀리고 매일 출퇴근 택시비로 6만 원씩 지출할 생각을 하니 중고차라도 하나 사는 게 낫다고 판단됐다. 마침 한국인 커뮤니티에 폭스바겐이 올라왔다. 나에겐 충분히 멋진 독일 외제차였고 가격도 저렴해서 차 구경을 한 당일, 거래를 맺었다. 하지만 나는 몇 개월 뒤 그 귀여운 폭스바겐을 팔았다. 그 시발점이 된 세 개의 상황이 기억나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대화다.
첫 번째, 동료와의 대화.
“너 독일차 좋아해? 그럼 왜 벤츠 안 사고 폭스바겐 샀어?”
그의 차가 벤츠였기 때문에 그냥 “너 차 멋지다!”하고 웃어넘겼다.
두 번째, 거래처와의 대화.
“차 어디 있어요? 저 빨간색 벤츠죠?”
미팅 후 팀원과 나를 배웅해 줬는데 내 차는 그 옆 회색 폭스바겐이라고 하자 살짝 당황해했다. 그 빨간색 벤츠는 내 팀원의 차였다.
세 번째, 꼬마 아이와의 대화.
“이모 차는 뭐예요? 저는 벤츠 좋아해요~”
책 거래로 인연이 되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부부의 유치원생 아이가 순수한 눈망울로 물어봤고, 벤츠는 아니라고 답하자 실망하는 눈치였다. (내 아이는 어렸을 때 화려한 도시보다 자연 속에서 키울 생각이다.)
그 뒤로 한 동안 길거리에 벤츠만 보였다. 심지어 폭스바겐보다도 훨씬 더 많이 보였다. 그래도 난 꿋꿋하게 내 차를 잘 타려고 했다. 사장님과의 어느 대화가 있기 전까지는.
“너 차 구했다며? 뭐 샀니?”
폭스바겐을 샀다고 말씀드리자 역시나 의외라는 듯 표정을 지으셨다.
“두바이는 자동차 종류도 훨씬 많은 데다가 가격도 쌀 텐데, 차를 별로 안 좋아하나 보구나?”
그냥 차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해서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정말 궁금하신 듯 물어보셨다.
“그럼 지금 네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건 뭐야? 코로나로 여행도 힘들 테고. 너는 지금 두바이 삶을 어떻게 최대치로 살고 있어?”
영어로는 정확히 “Then, how are you maximizing your life now?”였다.
그다음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삶을 최대치로 산다? 그 표현 자체가 생소했지만, 내가 살고 있던 방식은 삶을 극대화 (maximize life) 시키기보다 비용 최소화 (minimize cost)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3개월을 기다려, 나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받은 하얀 벤츠 쿠페를 구매했다. 그리고 지금 아니면 하기 더 어려워질 것들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기로 했다.
1년 만에 차를 바꾼 것이 옳은 선택은 아니었을 수 있으나 나에게는 잘한 선택이 되었다. 그때 그 돈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 높은 확률로 여러 가지 자잘한 것들에 조금씩 흩뿌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쓰지 않고 모았더라도 한국에서 언젠가 벤츠를 사기 위해 쓰이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평생 이클 AMG 쿠페는 안 샀을 것 같다. ‘두바이 있을 때, 젊었을 때, 싸고 가능할 때, 그때 한 번 타 볼걸’ 하며.
한국에 돌아와 이때의 기분을 종종 잊게 된다. 돈을 어떻게 안 쓰지 보다 어떻게 잘 쓸지를 고민하는 게 덜 후회스럽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었는데. 희한하다.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돈을 모아야 되는 분위기랄까. 지금 현재라서 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삶의 기대치를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서.
삶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첫 번째,
삶의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건 두 번째다.
Maximize your life first,
before minimizing your cost
일단 오늘 내 삶의 극대화를 위한 투자는 브런치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