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더 맛있게 먹기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꿈이 ‘닭꼬치 집 사장님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치킨을 좋아한다. 두바이에 있을 때는 교촌치킨 1호점이 오픈했다는 기사를 보고 왕복 70km를 달려 픽업해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돈 내고 순살치킨은 시키지 않는다. 치킨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배달시킨 음식은 역시 치킨. 주문 담당 친구는 순살 치킨을 시켰다. 이제 막 시청 중인 영상에 몰입하려고 하는데 두세 조각을 먹은 게 아니라 두세 조각만 남았다. 아무리 치킨을 좋아한다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먹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일반 뼈 있는 치킨을 시켰다. 그날 보던 영상은 끝났지만 치킨은 끝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손으로 치킨조차 먹지 못하게 하신 아빠 덕분에(?) 나는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젓가락으로 치킨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장 완벽하게 살을 발라내는 기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닭날개처럼 살이 많지 않은 부위를 먹으려면 젓가락과 손가락의 적절한 힘과 방향을 설정하는 고급 가락 기술이 필요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반대로 순살치킨은 아무 힘이 들지 않는다. 첫 두 조각은 맛이라도 음미하면서 먹는데, 그 이후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먹고 있는 건지 구강운동을 하고 있는 건지 특별히 의식 조차 하지 않고 그냥 씹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딱히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 먹게 된다. 배가 부르더라도 뼈 없는 작은 순살 조각이기에 어느새 습관적으로 입에 넣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행복의 지연 없이 그냥 콕-아 입으로 넣으면 되는 순살치킨의 맛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짧고 강력한 집중력으로 뼈를 발라 먹는 치킨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내 일상에서도 자주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같은 치킨이지만, 내가 대하는 태도에 있어 순살과 뼈 있는 치킨으로 나눠지는 것들이 있다.
“쓰기”가 뼈 있는 치킨처럼 노력하는 느낌이라면, “말하기”는 순살 치킨처럼 그냥 무의식적으로 말할 때가 많다. - 반대가 되어야 되는 게 아닐까? 말하기는 좀 더 의식적으로, 쓰기는 좀 더 자연스럽게.
“인사하기”는 무의식적으로 하는데 “그 사람을 보며 인사하기”는 의식적으로 해야한다 - 짧은 1초라도 상대방의 얼굴을 읽고 인사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
“지금 보자”라는 말은 몇 번이나 생각하고 말하면서, “다음에 보자”라는 말은 순살 치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말한다. - 그냥 지금 보거나 안 보거나 결정 해야겠다.
치킨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과 삶을 좀 더 멋있게 사는 방법, 이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나 스스로가 선택적으로 의식을 더하고 뺄 일을 나누고, 그에 맞게 의도적으로 행동하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
vs
좀 더 무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
그나저나 순살이든 뼈든 K-치킨이 정말 최고인 것 같다.
지금 그 닭꼬치 사장님은 잘 살고 계실까? 두바이는 교촌치킨 6호점까지 나왔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