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안 흘릴 수는 없고
한 달 전, 자카르타 맹그로브에서 모기에 물렸었다.
아직 9월이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날씨였지만, 숙소 5분 거리에 15,000개 넘는 후기가 있는 맹그로브 자연보호 구역이 있길래 모자와 긴팔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역시나 몇 걸음 걸으니 땀이 나기 시작했고, 무의식 중 옷소매를 걷어 올린 그 짧은 순간, 모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에겐 성가신 땀이 모기에겐 꽃 같은 존재였나 보다… 맹그로브에 입장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나의 온 신경은 1cm 동그라미에 집중되었다.
‘절대 긁지 말아야지. 몇 초만 참으면 가라앉을 거니까. 지금 긁으면 몇 초 뒤 후회할 거니까.’
하지만 이러한 다짐이 시작되는 동시에 이미 내 검지는 동그라미를 무차별적으로 파헤치고 있었다. 1초마다 더 가려워졌고, 그때마다 참아야지 다짐했지만 내 손가락은 초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내가 여기까지 땀 흘려 온 이유,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맹그로브에 집중하고 싶은데 시원한 물이 나올 수돗가만 찾고 있는 심정이란… 근처에 보이는 물은 나무뿌리가 치솟고 있는 진흙 물 뿐이었다. 결국 후기에 아무리 빨리 돌아봐도 몇 시간은 소요된다는 99.82 헥타르 (약 3000평) 규모의 맹그로브 공원을 나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나와버렸다. 그리고 지금 기억나는 것은 맹그로브가 아닌 그 모기 …
그 모기는 내가 자카르타에 있는 일주일 내내 나를 귀찮게 했다. 몇 분만 참으면 가라앉을 그 물림은 몇 시간 동안 나를 신경 쓰이게 했고, 긁으면 긁을수록 더더욱 참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하도 긁어서인지 나중엔 딱지 같은 상처까지 남았다.
그때 그 긁고 싶은 유혹을 몇 분만 참았더라면? 그러면 다음 날 또 참지 않아도 됐었겠지. 그리고 지금 ‘ㅁ’의 ‘모기’가 아니라 ‘맹그로브’를 쓰고 있었겠지?
오늘 하루도 바쁘게 움직였다. 확실히 가을이 되었지만 오늘만 해도 하루종일 수많은 모기의 유혹이 있었다. 아침에는 5분만 더 자고 싶은 유혹, 점심 식사 후에는 모닝커피에 이어 또 커피를 마시고 싶은 유혹, 오후에는 당 충전을 위해 초콜릿 딱 한 개만의 유혹, 저녁에는 그냥 앉아서 핸드폰을 보며 쉬고 싶은 유혹. 이런 유혹들을 참지 못하고 긁어버렸다면 아마 내일은 5분이 아닌 10분만 더 자고 싶을 유혹, 오후에는 커피와 초콜릿에 + 과자까지 먹고 싶을 유혹, 저녁에는 앉다가 스르르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싶을 유혹에 참기 더 힘들었겠지. 그리고 몇 달 뒤에는 늘어난 뱃살이든, 건조한 피부든, 안 좋아진 시력이든, 모기 물린 자국처럼 몸과 마음에 자국이 생겼을지 모른다.
어디론가 열심히 땀 흘려 걸어가다 보면 모기에 물릴 수 있다. 그렇다고 모기에 안 물리기 위해 집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우면 더울수록 찾아오는 모기. 하지만 그 순간의 유혹을 참고 무시하고 내버려 둬야 다음 날 더 큰 유혹도, 상처도, 기억도 없을 모기.
지금 긁으면 내일은 더 힘들게 참아야 하고,
내일 긁으면 모레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아, 열심히 글 하나 썼다고 단게 땡긴다. 하나 먹으면 더 참기 힘들어질 텐데…!
요즘 내가 가장 참고 싶은 유혹은 두 가지다 - 잠과 화. 이 두 가지는 유혹하는 그 순간이 최대의 고비다. 오 늘 늦잠을 자면 밤에 또 잠이 오지 않아 다음 날 더 늦 잠을 잘 것을 알면서도, 몸이 일어나질 않는다. 화는 또 어떠한가, 가까운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예민 보스가 출동하는 날에는 지하철 승차 시 스쳐 지나가는 땀 냄 새에도 인상을 찌푸리며 혼자서 화를 내고 있다.
모기에게 물린 상처가 벅벅 긁어 장미빛 상처가 되든 말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앞에서 나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가 된다. 애초에 모기에게 물리지 않게, 잠 이 오지 않게, 화가 나지 않게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딱 하나의 방법이 생각난다 - 온실 같은 방에서 완전히 충전된 핸드폰과 함께 나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참을 자신이 없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은 비겁하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물리고, 긁히고, 상처받고, 후회하며 살고 있다. 그게 바로 세상의 단순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오늘 못 참고 내일 더 힘들게 참아야 되면 어떠한가, 그래봤자 내일의 또 다른 유혹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차라리 잠도 자고, 화 도 내며 사는 것이 유혹 없는 쓸쓸한 방에 나를 가둬놓 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 믿는다. 어차피 모기 없는 여름 페스티벌은 없다.
모기에 안 물릴 생각 말고, 온실에서 나와 신나게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