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7] 11코스, 다시 시작
올레 걷기축제에 맞춰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그리고 올레길.
일 평균 5천 보도 걷지 않던 내가 걷기를 위해 휴가를 내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원래 계획은 연말인 만큼 행복이든 꿈이든 주제를 정하고 걸어볼까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업무에 치이다가 주제는커녕 휴가를 취소 안 한 게 다행이었다. 심지어 며칠 전 감기까지 걸려 조금 제정신은 아닌 상태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정말 걷기에 진심이 되어버렸나 보다.
11월의 첫 코스 11코스는 해가 거의 중천에 뜬 11시에 느지막이 시작했다. (의도한 건 아닌데 11시도 현실에 찌든 굼벵이의 최선이었다...) 시작점 하모체육공원에서 조금만 걸어가니 곧바로 모슬포항이 나왔다. 두 달 전이라면 환호했을 아름다운 제주도 해변길인데 이상하게 감흥이 크지 않았다. 감기 탓도 있겠지만 두 달 사이 해파랑길과 서울둘레길도 시작한 터라 바다와 걷기의 도파민이 그새 소진되기라도 한 걸까.
‘까막 득한 17.8km를 언제 다 걷지?’
시작부터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뇌와 근육은 기억하나 보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근육이 풀렸고, 두 달 전 7일의 올레길 여정이 내 주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듯이 6일 후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변화가 있을까 하는 설렘이 가득 차고 들었다.
모슬포항 주변 크고 작은 카페들을 지나 마을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아직 제주도인지, 조금 따뜻해진 서울인지 큰 차이를 못 느꼈다. 아직도 내 머리와 영혼 일부는 일터에 남아있었다. 내 소리 없는 불안을 듣기라도 한 듯 비밀 통로 같은 짧은 길을 지나자 곧이어 흙내음이 묻어나는 땅길과 잘 정돈된 산책길이 나왔다. 잠시 둘레길을 둘러싼 나무들의 그늘에 갇혔는데 오히려 편안함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꼭 ‘그늘에도 빛은 드니 걱정 마’라며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걷기의 묘미다. 나도 생각지 못한 나의 상황을 깨닫게 해주는 묘미!) 곧, 그늘이 걷히고 산방산과 한라산이 시원하게 보였다.
‘맞다, 나 지금 제주도지. 현실 걱정 그만하자.’
현실로부터 리셋이 필요했다.
올레길은 별미다.
그렇게 멋진 뷰를 보여주고는 계속해서 공동묘지를 보여줬다. 주변 올레꾼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11코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길’이라는 별명이 있는 듯했다. 제주도까지 와서 굳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묘를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묘비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생각난 묘비명은 ‘자유로운 행복한 삶을 살다가다.’ 그런데 또 ‘행복한 삶’은 너무 애매한 것 같아 정의를 해보려다 해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다’가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럼 ‘자유로운 삶’은 어떤 삶일까?
내가 자유롭다고 느낄 때는 1) 나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결정할 때, 2) 여유가 있을 때, 그리고… 3) 잃을 게 없을 때다. 마지막이 중요했다.
그동안 시간과 돈이 있어야 자유롭다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적어도 절대적으로는 돈이 많아졌을지 몰라도 덜 자유로워졌다. 즉, 반대로 잃을게 너무 많아져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모든 걸 기부하고 죽어야 하나? 그럴 용기는 없는데. 내 논리라면 나는 죽기 전까진 진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었다. 심란했다. 잃을 게 있을 살아있을 때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다행히 11코스는 대부분 평평한 코스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었다.)
11코스의 꽃, ‘신평 곶자왈’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았다. 15km를 지나 마지막 3km를 앞둔 지점이다 보니 들리는 대화도 길 위에 보이는 사람도 현저히 줄었다. 더군다나 코스의 피날레는 좁은 길 사이 돌도 많고 나무뿌리도 많은 곶자왈이었다. 시간은 잊은 채 완주만을 목표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힘을 내서 걸었다. 그런 나를 앞서간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는데 한 그룹 빼고 모두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셨다. 심지어 나는 헉헉대며 올라가는 오르막길에서는 반바지를 입으신 할아버지들께 추월당했다.
얼마 전 내가 마라톤을 시작하고 싶다고 하니 부장님께서 러닝은 나중에 무릎에 안 좋다고 말리셨던 기억이 났다. ‘내가 지금 내 관절을 아끼면 모아뒀다가 나중에 저분들처럼 쓸 수 있을까? 아니 쓸 용량은 남아 있겠지만 결국 쓰긴 할까?’ 무엇보다 지금 쓸 수 있는 내 관절을 아끼기 위해 마라톤도, 내리막길도 조심스레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를 지금의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살아있을 때 정말 자유로워지려면 돈도 돈이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 즉 몸과 마음과 머리를 아끼지 말고 써야겠다.‘ 는 생각이 뇌를 탁 쳤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고민했던 순간들이 정리되는 시점이었다. 걷기든 마라톤이든 춤이든 내 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아낌없이 써보는 것은 물론, 나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가장 슬퍼하실 부모님과 친구들을 위해 살아있는 나의 마음을 말 그대로 마음껏 후회하지 않고 써야 했다. 머리 또한 회사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가진 작은 지식들을 아낌없이 쓰고 나눠줘야 했다, 잃을 체력과 마음, 지식이 없을 때까지.
이로서 나의 묘비명이 정리되었다.
“몸과 마음과 머리 다~ 쓰고 자유롭게 갑니다”
물론, 나는 자유롭게 산이나 바다에 흩뿌려질 예정이지만 :)
두 달 만에 도전한 올레길 걷기는 시작은 미비했으나 끝은 울림 있는 5시간의 여정이었다. 역시 걷기는 언제나 나를 새로운 여행지로 데려다준다.
문득 궁금하다. 내 친구들의 묘비명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