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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네 Dec 14. 2023

팀을 떠나는 신입사원 ‘팀원’에게 보내는 편지

함께한 1년을 돌이켜보며

토끼, 퇴근, 태양… ‘ㅌ’으로 시작하는 일상 속 평범한 것들은 많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의 일상 속 늘 함께 있는 존재는 ‘팀원’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1년간 함께 일했던 팀원이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다른 조직으로 발령이 났다.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혼자 몇 글자 끄적거리다 보니 난생처음 팀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쓰게 되었다. 츤데레인 나는 아마 그녀에게 이 글을 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녀가 혹은 누군가가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의 초심을 기억하고 싶을 때, 따끔한 잔소리가 필요할 때, 그리고 위로받고 싶을 때 어쩌다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스스로 성장했고,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구나 토닥토닥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용기 내어 부끄러운 편지를 부쳐본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가명으로)




오늘은 가장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었어요. 수연님께 다른 팀으로의 인사이동을 얘기해줘야만 하는 날이었거든요.


2023년 1월 3일, 수연님과 처음 인사한 날이에요. 통성명을 하고 바로 1:1 점심을 먹게 되어 너무 어색했던 기억이 나요. (일정도 이름 없이 ‘신입사원’이라고만 저장을 해놨었네요.) 식당으로 같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굳이 뛰어가 문을 열어주시고, 엘리베이터가 오니 제가 탈 때까지 버튼을 누르시고 계시다가 제 뒤로 90도 인사하시며 타시는 모습에 수연님보다 제가 더 긴장했었어요. (이젠 이런 긴장감 있는 깍듯함이 조금 그립기도 합니다…ㅎㅎ)


식사를 하는데, 아마 질문의 90%는 제가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출근 첫날이니까 긴장한 상황 속에서 당연한 건데,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궁금한 게 없나? 내 첫인상이 별로인가? 케미가 잘 맞을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이유는, 수연님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도 매우 긴장된 점심식사였기 때문이에요. 고백하지만 사실 그때 저도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차라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아 보이는 건지 눈치를 좀 봤었거든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어색함이라 앞으로도 잊고 싶지 않은 수연님과의 첫 추억이에요.


그때는 몰랐어요. 수연님과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이 웃고, 울고, 추억을 많이 남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다음날 1시 30분, 우리의 첫 번째 1:1을 시작으로 다음 몇 주간 매일 아침 9시에 1:1을 진행했어요. 정말 고생 많았을 거예요. 매일 아침 미팅 하기가 정말 힘들었죠. 맞아요 지각쟁이 수연님, 잔소리예요!


사실 초반에는 많이 걱정했어요.

‘내가 없는 다른 미팅에 늦으면, 신입사원인데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생길지 않을까?’

몇 번 고민하다가 좀 엄하게 얘기를 했는데 마카롱과 쪽지로 다짐을 전해주실 줄이야. 그래서 오히려 너무 엄격하게 말했나 싶었는데, 결국 스스로 말씀하신 김수연 버전 10으로 정말 빠르게 업그레이드가 되어 돌아오셨어요. 한 순간에! 빠른 변화에 놀랐지만 너무 다행이었고, 오히려 수연님의 책임감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가장 중요한 서로 간의 신뢰가 조금씩 쌓였지요.

(혹시 이게 큰 전략이었다면 수연님은 천재예요.)



2월 한 달 동안은 비즈니스 리뷰 한 페이지에 모든 1:1 미팅을 집중했던 기억이 나요. 3월까지만 했다고 쓰고 있는데 실제로는 4월, 5월까지 매주 리뷰를 했었네요. 그리고 6월 2일은 마침내 수연님의 첫 성과를 회의에서 선보인 날이에요! 발표가 끝나고 신이 난 수연님의 모습도 잊히지 않지만 4개월 동안 (우리 둘 다 ^^) 힘들었던 여정이 조각조각 더 기억에 남네요.


[옹알이 단계]

첫 리뷰 미팅에서는 쑥스러워하시며 PC를 연결하고 문서 창을 보여주셨죠.

"일단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

맞아요. 그때 정말 그냥 생각을 막 적은 것처럼 보였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았.. 어요^^;


[말하는 단계]

그래도 다음 미팅 때는 문단을 적어왔어요. 다만, 문단을 너무 많이 적어와 주셨죠… ^^;

분명 1페이지였는데 4페이지나 되는 내용을 가지고 왔던 것 같아요. 그것도 앞뒤로. 그러고 보니 4개월 동안 4페이지를 1페이지로 줄였으니, 한 달에 한 페이지씩 줄인 셈이네요. ㅎㅎ


[대화 단계]

다음 미팅 때는 문단을 넘어 이야기를 생각해 본 게 보였어요. RCA (Root cause analysis)를 여러 측면으로 설명해 주시면서 이슈가 발생한 진짜 이유를 많이 고민하신 게 보였어요. 최고!

사건과 이슈, 그리고 그 이슈가 발생한 원인의 차이를 아직 좀 헷갈려하셔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막혀서 문제였지만요... ^^


그때 제가 이쑤시개처럼 많은 질문을 했는데 사실 헷갈려하신 게 당연한 거였어요. 아직 두 달밖에 안되었고 행사를 스스로 처음부터 계획한 적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질문에 답을 다 할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보통 신입사원은 비즈니스 리뷰를 자주 쓸 일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그냥 보내버리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수연님은 가이드만 있으면 책임감 있게 잘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욕심을 좀 부려봤어요. 중간중간 저도 체력이 떨어질 때가 있었는데 수연님의 눈에서 '이 리뷰,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야심 찬 열망이 엄청 느껴져서 저도 에너지를 끌어올렸던 것 같고요.

(알고 보니 피곤하거나 잘 모를 때도 집중하려고 눈을 똥그랗게 뜨신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


그렇게 저는 화이트보드에, 수연님은 노트북에 둘이서 예술가처럼 그리고 쓰고, 몇 시간을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행사 횟수와 종류, 평균 매출... 저야 이미 해봤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면 됐지만, 수연님은 몇 시간 동안 어떻게 계속 듣고 답하고 쓰셨어요? 그때의 수연님은 정말 배우려는 의지가 차고 넘쳐나는 분이셨어요. 그리고 더 고마웠고 놀라운 건 지금의 수연님은 아직도 배움의 의지가 차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는 거예요. 이후에 많은 어려움과 성장 과정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러고 보니 분기마다 한 번씩은 큰 일을 해내셨네요.



근데 그거 아세요? 이런 큰일이 맡겨질 때마다 수연님이 종종 하는 말이 있어요.


"아,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으악~ㅠㅠ"


쓰고 보니까 말이 아니라 포효 같긴 하지만.

수연님의 으악~ 포효를 듣고 있으면서 언젠가는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리고 함께했던 매니저로서 마지막으로 이걸 포함해 앞으로 수연님이 기억해 주면 더 고마울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1. 너무 겸손한 우리 수연님은 “으악~ 이걸 제가 어떻게 해요 ㅠㅠ~”라며 가끔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알죠? 저를 포함한 앞으로의 수연님의 매니저들도 발표든, 팀 프로젝트든, 어떤 일을 맡길 때는 이미 수연님이 그 일을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맡기는 거라는 걸. 만약 의구심이 들었다면 아예 맡기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수연님을 믿어주는데, 수연님도 앞으로 스스로를 더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2. 너무 열정 넘치는 우리 수연님은 의욕이 떨어지면 바로 눈빛과 표정에서 티가 난답니다?  대화를 통해 잠시 생기가 도는 듯 하지만 미팅룸을 나오고 일상 업무에 돌아가면 다시 원점이 되시더라고요. 이런 수연님의 눈에서 다시 생기 넘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생각해 봤는데요”라고 서두를 던질 때에요. 저로부터 칭찬이나 쓴소리를 듣는 그 순간이 아니었어요. 무엇이 됐든 '스스로'이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진 뒤였어요. 누구나 의욕과 에너지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사람이니까요. 그럴 때는 자책하거나 채찍질하지 마시고, 잠깐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수연님이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어떨까요? 수연님이 수연님의 마음을 스스로 충분히 이해하고 무언가를 했을 때, 발휘하는 에너지와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거든요.


3.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 수연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 알 거예요. 그래서 수연님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죠. 회사만 해도 주변에 수연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1년 안에 너무 많아진 게 보여요. 수연님이 이렇게 마음을 움직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도 좋지만 이젠 받아보는 건 어때요? 좀 많이 어색하죠? 수연님 성격상 주는 게 맘 편하고 폐 끼치는 거 싫어하는 것 알아요. 그런데 받는 것도 주는 사람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거잖아요? 특히 이제 새로운 사람, 새로운 비즈니스라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수연님이 도와달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수연님을 도울 수 있다는 기회에 행복할 거예요. 앞으로 좀 더 당당하게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줄 기회를 선물해 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언젠가는 얘기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얘기해줘야 할 타이밍이 왔네요.

수연님과 함께한 1년은, 짧다고 할 수 있는 1년이 아니라, 정말 짧았던 1년이에요. 이렇게 깊은 추억으로 가득한 1년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요. 그동안 조금씩 생각했던 것들을 벌써 전달해 줘야 되어서 정말 아쉽지만, 벌써 전달해도 될 만큼 성숙해진 수연님께 감사하고, 낯선 환경에서 더 성장할 수연님을 상상하니 설레는 마음이 더 커져요. 성장이라고 얘기하니 수연님 성격상 또 부담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말인데… 끝으로 ^^

남들이 말하는 훌륭한 성과만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는 수연님은 남들과 ‘다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며칠 전 사내 송별회가 있었어요. 저녁자리에서 다른 분들이 아직 00팀 수연님이라고 부르는데 내심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제… 어디를 가든 '00팀 김수연이었다.'
라고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자랑스럽고 다행이고, 고마워요.


2023년, 우리 팀에 와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연님.


- 2023. 12월, 평범함이 가장 특별한 존재였음을 떠날 때 되니 깨달은 부족한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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