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도전
2024년이 벌써 5일이나 지났다. 새해의 희망찬 다짐과 열정이 고새 식고 있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 1년 전 정동진 시간박물관에서 내가 나에게 보냈던 엽서 한 통이 느린 우체통을 타고 도착했다.
작은 엽서에는 2023년 2월에 썼던 작년의 바람이 쓰여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건강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로 작은 별 연주하기가 있었다. 피아노는 기억조차 못한 작년의 목표였다. 정동진을 갔던 기억은 있는데 거기서 엽서를 썼었구나라는 사실도 이제야 생각이 났다. 그래, 작년 이맘때쯤 1박 2일로 동해를 갔다 왔었지. 근데 뭘 했었더라?
이틀의 기억을 되찾으려 사진첩을 뒤졌다. 사진을 보니 다행히 기억은 났다. 맞아 이 닭강정 맛있었는데, 이 숙소는 생각보다 추웠지. 추억에 심취해 사진첩을 쭉쭉 내리다 보니 의외로 기억하지 못했던 작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여기도 갔었나? 이걸 먹었구나. 왜 이런 주말의 일상은 떠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1년 365일 중 토요일과 일요일은 총 104일이다. 그리고 작년 한국의 공휴일은 15일, 여기에 내 연차를 더하면 최소 130일이 휴일이었다. 공휴일과 주말이 겹친 날도 있었겠지만 1년 중 35%가 휴일이었다고 생각하니 한 해의 성과와 별개로 일상의 내 휴일을 어떻게 보냈었는지 궁금해졌다.
1시간에 걸쳐 쉬는 날에 무엇을 했는지 사진첩과 카드 앱을 보며 카테고리화시켰다. 휴일의 25%는 홍길동 마냥 여기저기 놀러 다녔고, 다행히 15%는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해외여행은 총 14일을 갔는데 여행이 준 여운 대비 훨씬 짧은 휴일 일수라 놀랐다. 그리고 무려 35일은 별다른 기록이 없었다. 물론 기억도 없다. 휴식으로 며칠은 별 일 없이 지나갔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1년 중 한 달 넘는 날들이 내 기억에서 사라진 사실에 벙이 쪘다. 0_0
연말을 마감하며 나도 남들 다하는 한 해 되돌아보기를 했었다. 이루었던 성과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아쉬운 점도 적으며 올해도 목표를 세웠었다. 다시 건강, 가족, 독서 등등. 결국 작년과 큰 그림에서는 비슷했다. 일탈을 꿈꾸며 월 별 공휴일도 검색했었다. 그런데 막상 100일이나 넘는 휴일에 대한 계획은 생각지도 못했다. 100일이면 곰도 인간이 될 수 있는 시간인데...
나에게 100일의 기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하루의 휴일은 축제, 쇼핑 등 계획하기가 쉬웠는데, 100일이라고 생각하니 예상외로 어려웠다 (해외여행은 빼고). 늘 하고 싶었지만 시작하지 못했던 것을 돌이켜보았다. 악보 없이 피아노 한 곡 연주하기, 스우파를 보고 춤 배우기 등등. 물꼬가 트이니 한 번쯤 다짐했던 것들은 꽤 많았다. 그런데 올해도 벌써 5일이 지났는데 시작한 것은 없었다.
게을렀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는 집중할 수 있는 그 하루, 여유로운 그 하루를 기다렸다. 다만 결국 그 하루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100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하고 싶은 걸 하기에 시간이 충분해 보였다.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 정도면 피아노로 작은 별 연주도 할 수 있겠지, 춤 한 곡도 충분히 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는 오늘 2024년 첫 휴일인 토요일,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100일의 도전: (춤 학원은 또 미룰 테니 일단) 다리 찢기 연습을 시작했다! 90도도 안 벌려지는 다리에 충격을 먹었지만… 앞으로 99일의 휴일이 남았기에 주말만 찢어버리면 올해 안에 찢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100일의 도전은 100일의 휴일에
100일 동안 주말도 다리도 한 번 찢어보자
신나는 마음으로 새로 산 2024년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리고 형광펜으로 모든 휴일에 줄을 그었다. 100일 넘게 줄을 그어보니 오히려 내 휴일 일정에 업무 일정이 끼어들어간 것처럼 보여 1년의 구성이 달라 보였다. 더불어 형광펜이 시작되는 토요일을 일주일의 시작으로 보니 한 주가 더 길어 보이기까지 했다.
10일 휴가를 넘어 100일의 휴일을 계획할 수 있다니 갑자기 시간이 충분해 보인다.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평온한 자신감도 생겨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올해는 진짜 찢겠는데~?
다리가 찢기기는커녕 민망함에 입이 찢어진다. 연초의 다짐이 무색하게 작년 한 해 다리를 찢어보려고 노력한 적은 아마도 저 글을 썼던 날 하루였다. 왜? 내 삶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100일의 도 전처럼 어마어마한 끈기가 필요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나,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위험이 명확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그 위험 을 객관화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것은 개인적으로 1번 가족, 2번 돈이었다.
작년 한 해 내가 100일 동안 매일매일 한 것이 있다. 바로 러닝 블로그 글쓰기다. 그 뒤에는 돈이라는 위험이 있었다. 30만 원을 업체에 입금하고, 90% 이상 달성 시 다시 전액을 돌려받는 시스템이었다. 1분 플랭크도, 쉬 운 다리 벌리기도 꾸준히 안 했던 내가 매일 뛰고, 노트 북을 켜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하는 글쓰기를 100일 했다. 잃지 않기 위해. 그러고 보면, 우 리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때 보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잃을 수 있을 때 더 동기부 여가 되는 것 같다. 100일의 도전을 하고 싶다면? 입금 이 답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단순한 인간이었다.
얻고자 하는 게 없다면 잃기 싫은 것을 향해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