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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네 Nov 27. 2023

멘탈관리에는 ‘치실’ 사용하기

해보니 정말 별거 아니다

양치 후 치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몇 명 정도 될까? 기사를 보니 10명 중 3명만 사용하는 듯하다.


내가 처음 치실을 쓴 날은 싱가포르에서 망고를 먹었을 때다. 저녁으로 망고만 질릴 때까지 먹을 마음으로 한 아름 사 왔지만 녀석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첫 망고는 어디서 본 바둑판 모양처럼 칼집을 내려다 껍질까지 칼집을 내버렸다. 바둑알 하나씩 다시 껍질을 벗겨내느라 망고를 먹는 건지 과일껍질 벗기는 신부연습을 하는 건지, 먹을수록 피곤만 쌓였다.


그다음 망고는 사과처럼 깎아먹기로 했다. 미끌 거리는 망고를 여러 번 떨어트려가며 겨우 껍질을 벗겼는데 이미 반쯤 짓눌린 망고를 보니 다시 조각으로 자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포크를 들고 콕 집어 굶주린 원시인처럼 그대로 베어 먹기 시작했다. 첫 망고보다 훨씬 쉽게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먹고 나서였다. 360도 혀돌림과 두 번의 칫솔질에도 불구하고 망고줄기 같은 것들이 치아 사이사이에 박혀 도무지 빠져나올 생각을 안 했다.


결국 난생처음 치실을 사 들고 와 입 안 낱낱이 작업을 하며 살면서 제일 오랫동안 내 구강 구조를 바라보았다. 이토록 끈질긴 망고에 한 번 놀라고, 더불어 세상에 나온 다른 이물질들에 두 번 놀랐다…ㅠㅠ


이후부터 양치 후 찝찝함이 느껴지면 종종 치실 사용을 했고, 이젠 하루에 한 번은 꼭 치실을 사용한다. 요 근래에는 연말이라 약속이 많아져 고기에 고기를 먹으면서 치실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당장 나에게 위협을 주진 않지만 모이면 분명 날 귀찮게 할 플라그들을 매일 조금씩 해치워주는 소중한 치실이다.



어느 날도 그랬다. 회사에 치실이 다 떨어져 집에 도착해 사용을 하는데 이 날은 이 아이가 특근을 한 셈이다. ‘양치만 했으면 어쩔 뻔했지?’ 늦게라도 구강관리를 했다는 개운함과 동시에 하루종일 고생한 내 멘탈도 치실로 개운하게 할 수 없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나에게 위협을 주지 않지만 왠지 찝찝한 내 머릿속 작은 플라그들은 뭘까?

멘탈 치실질 작업에 나섰다.


한 동안 보지 못하고 연락도 뜸해져 이젠 연락할 때 아주 작은 용기가 필요해진 나의 오랜 초등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언젠가 봐야지라는 플라그를 이번엔 생각났을 때 빼기로 하고 바로 카톡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안부만 물었을 텐데 아예 날짜를 정하는 게 내가 정한 치실질이었다. 2주 뒤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날짜만 잡았을 뿐인데 1%의 찝찝함이나 서먹함 모두 말끔히 사라졌다.


망고 때 마냥 개운함을 느끼고 신이 나서 다음 플라그를 생각했다. 핸드폰이 곧 나이므로 깔려 있는 어플들을 보기 시작했다. 공부해야지 하고 다운로드한 그날 이후 한 번도 열지 않은 중국어 어플, 진작에 지웠어야 할 소개팅 어플, 내 멘탈에 괜한 찌꺼기만 안겨주는 여러 OTT 어플 등등. 10개 넘는 어플들을 지우고 단출해진 화면을 보니 그것만으로 머리가 개운해졌다.


또 나를 괜스레 찝찝하게 만드는 게 무엇이 있을까? 책상에 앉으니 보이는 투두리스트. 핸드폰은 물론 책상 위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해야 할 것들이 보였다. 언제 썼는지 모를 잉크가 바래진 포스트잇들이 반이었다. 이런 크고 작은 리스트들을 실천하면 최고였겠지만 오히려 내가 나에게 찝찝함을 쌓는 플라그 리스트가 되어있었다. 포스트잇을 다 떼고, 핸드폰 투두리스트 어플도 지워버렸다. 할 거면 바로 하고, 정말 중요한 거면 굳이 쓰지 않아도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할 것 (= 즉 하지 않을 것)은 머릿속에 찝찝하게 새겨넣지도 말자라고 다짐했다.


양치 후 치실하기는 1분 안에 할 수 있는 작은 루틴이다. 이것처럼 멘탈 치실질도 생각보다 아주 소소한 행위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머리가 가벼워졌다. 이 모든 것들이 쌓였다면 나중에는 스케일링이나 치과 치료처럼 더 큰 노력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아예 제거할 엄두도 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는 멘탈이야말로
별거 아닐 때
별거 아닌 노력으로 청소해 주자
쌓이고 쌓여 눈에 보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딱 하나 투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양치 후 멘탈 치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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