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으로 살고 싶다
요즘 나의 하루는 크림빵으로 마무리된다.
독하게 뺀 9kg의 몸무게를 이 녀석 덕분에 너무나 쉽게 채우고 있지만, 너무 맛있다. 특히 소보루 크림빵이 나의 최애다. 적당히 씹히는 식감과 입 안에 넣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리는 크림의 완벽한 밸런스. 그리고 무엇보다 한두 번 베어 먹다가 드디어 가운데 크림을 만나는 그 순간! 피곤에 지친 나를 단숨에 기분 좋게 해 준다. 한입 베어 먹기만 하면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노력도 요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달달한 행복을 주는 크림 때문에 힘든 하루 후 매일 크림빵을 찾게 된다. 가끔 진열된 빵이 다 떨어졌을 땐 빵집 아저씨께서 이젠 자연스럽게 냉동실에서 꺼내 주신다. 이런 날은 해동이 되기까지 한 시간쯤 기다려야 하는데 5분이면 사라질 행복을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원래 나는 빵보다 밥순이였다.
카페에서 디저트로 케이크를 시키는 친구들에게 포크질 몇 번에 없어질 텐데 차라리 얼른 배부르게 밥을 먹자고 하던 감성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름에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3개월 간 밀가루와 당을 자제했더니 이제는 밥은 걸러도 빵은 안 거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같은 탄수화물인 건 알지만 빵에 빠져버린 이유는 단순하다. 더 짧은 순간 더 높은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슷하게 높은 열량이라면 ‘더 짧고 굵게 먹고, 행복해질 달달구리가 효율적이지’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이런 합리화는 가끔 회사에서도 쓰였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거나 분위기를 전환시켜야 할 때는 쓴 아메리카노보다 달달한 더블 에스프레소 크림 라떼를 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무장해제 시키는 전술을 썼다. 어느 날도 팀 미팅 전에 커피를 시켜 나누어 줬다. 최근 한 달 사이 세 번째 커피였다. 그런데 이번엔 어째 반응이 시큰둥했다. 효과가 없었다. 달달한 커피는 초반엔 저비용, 저노력으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결국 커피가 사라짐과 동시에 반응도 사라지는 효과 없는 방법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제야 보였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매일 크림빵을 먹고 있듯 회사에서도 이런 쉬운 꼼수에 익숙해질뻔한 사실이 이제야 보였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떠나 내 삶 자체가 효과보다는 효율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삶인 듯하다.
가까운 거리라도 내비게이션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루트를 찾고, 이 추운 겨울에도 빠르게 나를 깨워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별 노력 없이 순식간에 도파민을 부스트해 줄 크림빵을 먹고 있지 않은가. 원래 모두들 이렇게 살까?
두바이에서는 조금 달랐다.
동료들은 아무리 더워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서로를 보며 마셨고, 가장 많이 먹었던 달달구리는 크나페라고 치즈 페이스트리로 만든 아랍식 디저트였는데, 1인용으로 작게 파는 곳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피자처럼 적어도 2-3인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크기로 팔았고, 두바이 사람들은 디저트만 먹기보다 따뜻한 차와 곁들어 천천히 다 같이 먹었다.
요즘은 사회 자체도 효율이 우선시되는 세상인 것 같다.
5년 전 해외 파견을 나가기 전만 해도 신기했던 무인 키오스크가 이젠 없는 곳이 거의 없다. 내가 신입사원 때 끙끙대며 썼던 회의안도 음성 녹음 AI가 대체해 주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인간은 게을러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점점 더 효율적인 삶을 살려고 하지만 효과를 생각했을 때는 결국 그 어떤 기술도 사람을 못 따라가지 않을까. 얼음 가득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침에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보내주는 카톡만큼 나를 효과적으로 깨워주진 않고, 씹을 필요 없이 그냥 녹아버리는 생크림도 엄마아빠의 행복한 웃음만큼 나를 달달하게 해주진 못하는 것처럼.
효율적인 삶보다 효과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원온원’이라는 책을 샀다. 조금 느리더라도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그리고 크림빵은… 엄마아빠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