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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네 Oct 01. 2024

다시 혼자 걷는 올레길 - 찐 행복을 찾아서

[올레 15] 1코스 시흥-종달리


 드디어 다시 혼자다!

‘맨 처음 마을‘이라는 시흥리에서 시작한 대망의 올레 1코스. 사람에 치인 나에게 혼자 걷는 한적한 올레길은 생각만으로도 설레었다. 스탬프를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오름이 나왔다. 첫 번째 오름은 말의 머리인지 꼬리처럼 생긴 ‘말미오름’이었다. 약간 가팔랐지만 지칠만하면 나비들이 날아와 힘내라고 응원해 준 덕분에 순식간에 정상에 도달했다. 역시 자연이 최고의 친구다.

아직 첫 번째 오름이지만 어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았다. 새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길은 정말이지 너무 고용하고 평화로웠다. 얼마 전 새로 산 핸드폰으로 자신 있게 사진과 영상을 막 찍어대는데 ‘내추럴 라이트’ 모드는 내추럴이 아니었다. 그 어떤 신기술도 진짜 자연의 색감은 낼 수 없나 보다. 대신 두 눈에 말미오름 정상에서의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꽉꽉 담아냈다. 누구 하나 보채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했다.

’ 그래, 결국 인생은 혼자 사는 거야.’


곧바로 두 번째 오름이 이어졌다. 알의 모양을 닮은 알오름으로 가는 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숲 반, 하늘 반인 대자연에서 나무도, 숲도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올라갔다. 5초 만에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예쁜 하늘이 앞에 있더라도 올라가는 건 뭐든지 힘들구나.‘


저 멀리 새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조금 낮게, 그저 바람 따라 날고 있었다. 분명한 건 더 높이 있는 저 새보다 내가 더 힘들겠지만, 더 행복했다. 힘든 이 순간에 행복해하는 이상한 나는 순간 궁금해졌다.  


‘왜 인간은 뭔가 계속 성취하려 할까? 저 새는 더 높이 올라가려고 매일 날갯짓 연습을 할까? 우리는 왜 늘 더 올라가고 싶어 할까? 더 높이, 더 멀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순식간에 올라온 알오름 정상에서 본 경관은 기가 막혔다. 얼마 전 다녀온 보라카이 바닷색보다 훨씬 오묘하게 아름다웠다. 어쩌면 이런 새로움, 앎에 대한 열망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름은 눈앞에 보이면 올라가고 싶어지고, 오름이 있는 올레길이 끝나고 보면 훨씬 재미있다. 인생이 오름 없는 평평한 올레길이라면 난 어느새 오름을 찾고 있을 게 뻔했다.


바로 내려가기 아쉬워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 놓은 돌탑에 나도 작은 돌을 집어 소원을 빌었는데, 생각 없이 바로 나오는 한 마디.

“엄마 아빠와 오랫동안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결국 가족이 나한테 1순위였다. 너무나도 단순한 행복의 정의로, 행복공식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름에서 내려와 묘지를 지나가는데 눈에 흙먼지가 들어왔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꼭 하고 싶은 게 있을까? 어게인,

“엄마 아빠와 좋은 시간 많이 보내고 싶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제주도 올레길을 걷다 보면 꼭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꼭 마지막은 가족으로 연결된다.


오름에서 내려와 도착한 종달리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벽화도, 카페도, 나무도. 나무들은 신기하게 모두 뒤엉켜있었다. 내 땅 네 땅 할 것 없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 나무는 또 다른 나무의 잎사귀로 둘러싸여 있었다. 잘 살겠다고 서로의 양분을 나눠주고 있는 나무들이었다. 나무도 저렇게 의지하며 사는데, 나는 지금 혼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니. 결국은 오늘 걷는 내내 가족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느새 성산일출봉이 코 앞에 보였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외쳤다.

“찐 행복은 혼자 이루어 낼 수 없다!”


아무리 걸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예쁜 사진을 많이 찍더라도 공유해 줄 누군가가 없다면 이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추신. 용기 내어 게스트하우스 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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