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비행과 여행 2. 남겨두기

by 너일론

| 여행이 일상이 되면


해외에 체류하다 보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외출을 하게 된다. 가끔은 큰맘 먹고 투어에 나서기도 한다. 크루 중 누군가 흥미로운 일정을 짜왔거나,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가기 위해 렌터카를 빌리면 함께 길을 나서곤 한다.


기념품은 거의 사지 않는다. 좋아 보였던 물건도 집에 오면 애물단지가 된다. 디저트가 맛있어 몇 개 더 사 오는 경우에도 그렇다. 분명 감탄하며 먹었는데, 집에서는 좀처럼 재현되지 않는다.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에서 우리는 음식의 맛 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의 공기와 날씨, 주변의 분위기, 약간의 피로감과 설렘까지 함께 저장한다. 경험은 언제나 총체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사진도 그렇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열심히 찍다 보면 사진은 남을지 몰라도 경험은 빈약해진다. 사진은 두어 장 찍고 주변을 조금 더 걸어보자. 눈으로 풍경을 담고, 코로 향기를 음미하고, 발로 땅을 딛고 직접 걸어보는 것, 그 경험이 훨씬 오래 남는다.


특히 후각은 추억탐험 여행의 일등공신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스페인 마드리드였는데 그때 거리에서 느꼈던 달짝지근한 향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그때의 마드리드로 돌아가곤 한다.


그러니 여행지에서는 오감을 충분히 열자. 그날의 온도와 습도, 분위기와 향기 등을 온전히 행복으로 바꾸어 추억하자.



| 남겨두는 여행


반면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보지 않고 남겨두기도 한다. 보통의 여행자는 현실적으로 같은 곳을 두 번 이상 방문하기 어렵기에 한 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 할 것이다. 지도상에 볼 것들, 먹을 것들을 찍어두고 한 붓 그리기 동선을 짜게 된다. 하지만 다음 주에 또 올 수도 있고 가족여행으로 다시 올 수도 있는 조종사들의 여행은 그렇지 않다.


여러 번 와야 하는 곳을 여전히 설레는 곳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보면 안 된다. 한 번에 한 두 개씩 아껴 보며 여전히 다음에 경험할 것들을 남겨두는 것이다. 취항지가 변경되는 등의 이유로 다시 못 올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미지의 것이 남아 있어서 가보고 싶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설레는 곳이 된다.


인간관계도 그렇지 않은가.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본 것 같은 사람은 호감도가 내려갈 일만 남아 있지만 미처 탐험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법이다. 늘 조금씩 남겨두는 연습을 하자.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