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라도
몇 년 전 고등학교 친구와 판교에서 만났을때 친구가 물었다.
"너 평양 냉면 좋아하냐?"
집안에서 어려서 부터 먹던 평양랭면. 유명한 집은 다 가봤은데. 친구가 말한 집은 처음 듣는 생소한 집이었다.
"능라? 첨들어보는데. 듣보잡 아니냐?"
"능라라고 요즘 뜨는 집이야"
요즘 새로 뜨는 평양 냉면집이라니. 우래옥, 평양면옥, 을밀대. 평가옥 어딜가도 최소 40~50년 된 집들이다.
반신반의하면서 갔던 곳이 판교에 위치한 능라. 지금은 이름을 능라도로 바꾸었다.
그날 가서 먹었던 것은 냉면과 온반. 그리고 수육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능라의 빅팬이 되었다.
그 판교의 능라도가 강남의 역삼동에 분점이 생겼다.
능라도 안쪽에는 방앗간이 있어 가게안에서 직접 메밀면을 뽑는다. 메밀을 다른 곳에서 받아 오는게 아니라 바로 뽑는 평양냉면. 메밀의 순도와 선도가 좋을 수 밖에 없다.
기본 반찬은 물김치와 무채다. 깔끔하게 나온다.
이집의 하일라이트 어복쟁반. 소고기 편육과 야채. 육수를 놋쟁반에 올려 끓이는데. 한소끔 끓은 후 야채가 풀죽은 후에 바로 먹는 것보다 약간 시간이 지난 후에 국물 맛이 더 진해진다. 향긋한 풀 냄새와 어울어진 담백하고 진한 국물. 양이 꽤 된다. 4명 간다면 중짜 시키고 다른 걸 시켜야 한다.
온반. 일종의 국밥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집에서 냉면보다 더 좋아하는 메뉴이다. 맑은 육수는 냉면 육수와 같은 국물이다. 같은 국물을 냉면은 차게 온반은 뜨겁게.
제대로 된 녹두 지짐이. 녹두 빈대떡이 아니다. 광장시장 같은 데서 녹두 빈대떡을 먹으면 기름에 거의 튀기다 시피해서 식용유가 뚝뚝 떨어지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기름지지 않고 매우 담백하고 바삭하게 잘 구워(?) 냈다. 식감이 정말 좋다.
북한 스타일의 만두, 할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주신 그 만두맛 그대로인 만두로 모양이 투박하고 크기가 매우 크다. 메뉴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실물은 훨씬 크니 참고하시길.
사실 이집에서 어복쟁반을 시킬 때는 랭면을 시키지 않는 게 좋다. 어복쟁반의 맛이 강해 랭면이 너무 싱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랭면은 점심 때 따로 랭면만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어복쟁반처럼 놋그릇에 올린 랭면은 방앗간에서 직접 뽑은 면을 사용하여 선도가 높아 면빨이 고소하고, 특히 국물은 여운이 긴 깊은 맛을 낸다. 정통적인 평양랭면은 맛과는 다르지만 현대적으로 랭면 맛을 잘 해석해 낸 맛이라고나 할까. 원래의 평양랭면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집의 랭면을 좋아한다. 육수는 그 담백하고 신선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맛있는 드립 커피나 수제 맥주를 먹었을 때의 고소한 느낌이 같이 오는데 그 뒷맛의 여운이 매우 길다. 우래옥이나 평양면옥, 봉피앙 같은 곳하고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냉면의 원래 이름은 랭면이다. 냉면이 아니라 랭면. 그래서 이곳의 냉면도 평양랭면.
그리고 정말 원래 평양냉면의 이름은 평양냉면이 아니고 피앙랭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