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Jun 25. 2021

아기를 가슴에 묻은 사람들

또 그걸 지켜보는 나

분만실이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종종 아기들이 죽곤 한다. 물론 살리지 못한 아니면 이미 죽은 아기들을 대하는 내 마음도 아프지만 그 아기를 잃은 부모님들 그 가족들의 마음은 헤아릴 수 조차 없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런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갑자기 아기들을 잃는 부모들의 심정은 어떨까.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은 예상보다 훨씬 큰 괴로움을 가져왔다. 오랜 시간 아파하고 슬퍼했다. 흘린 눈물과 괴로움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많이 아프다. 하지만 만약 내 아이가 죽는다면, 아마 나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아버지의 죽음도 어려웠지만 한 번도 내가 살아 남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슬픔을 아는 나에게 그보다 더 큰 아픔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오늘 아침에도 갑작스러운 아기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가족 그리고 이미 중환자실에서 몇 달을 같이 보내 정이 든 의료진이 슬퍼하고 또 절망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혹시나 실수한 것은 없는지. 행여나 이 죽음을 방치한 것은 아닌지. 그전에 미리 알아채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함께 작은 발자취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여러 각도로 보고 또 보았다. 결국 우리는 밝혀 내지 못했다. 부검을 통해 결과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가족들을 위로하고 또 의료진들의 마음을 보살피고 또 다른 환자들을 치료할 수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기의 죽음을 다른 좋은 명분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거의 일 년간 많은 고비와 수술을 거친 한 아기의 부모님은 결국에는 아기를 잃었지만 아직도 우리 병원과 환자들의 부모님들을 위해 봉사 하고 있다. 아직도 그 경험과 슬픔을 세상과 나눈다. 나 또한 이 부모님을 통해 많이 배웠다. 아기가 많이 아파서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했을 때 포기하지 않았다. 아기와 우리는 열심히 싸웠고 또 고비를 넘겼다. 그 후에 회복한 아기는 부모님에게 또 의료진에게 수많은 사진을 비롯해 소중한 추억을 남겼다. 마지막엔 결국 숨을 거두었지만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니 살아있다. 아직도 그 대화를 할 때 그들의 슬퍼하는 모습, 그 뒤에 나아진 아기의 모습, 아기가 커가는 과정들, 또 함께 했던 모습, 항상 감사를 표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정말 다행히 내 조언을 듣지 않아서, 그 고비를 넘겨서, 이 아기는 부모님과 또 우리와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하마터면 그 소중한 시간을 내가 빼앗을 뻔했다.

나의 아버지의 기일에 하늘로 돌아간 아기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내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나 과정보다 훨씬 더 아파하고 힘들어할 이 아기의 가족들이 먼 훗날에는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하늘나라에 당도하면 다정스러운 나의 아버지가 이 아기를 보듬어 주기를, 아기의 부모님들이 못 안아준 시간만큼 그가 안아주기를 소망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의사도 무섭... 아니 의사라서 무섭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