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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Jul 09. 2023

아기와 함께 아기 침대에 누운 엄마

한겨레 21 연재 중 - 한겨레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젯밤에 잘 주무셨어요? 우리 아가, 사무엘(가명)도 잘 잤죠?"

경쾌하게 인사를 나누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에는 다른 신생아중환자실과는 달리 하얀 철재로 만든 커다란 아기 침대에 백일이 지나 7kg이 훌쩍 넘는 사무엘이 누워있었다.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싱그럽고 빨갛게 빛나고 있어 꼭 안아주고만 싶은 아기였다. 아기만큼 환한 햇빛이 병실 안을 쨍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부자가 방 안을 더 따듯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스미스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무엘이 지금 경련 중이에요."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슬픔의 향이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사무엘은 유아성 경련이라 불리는 심각한 질환을 앓는 아기다. 태어난 지 12개월 전후인 아기가 뇌전증을 앓게 되면 이러한 병명이 붙는다. 팔과 다리가 양쪽 모두 고르게 굳어지면서 짧게 움찔대는 듯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1만 명 중 한두 명만 걸리는 드문 병으로 보통 유전질환이 요인이다. 그렇지만 어떤 연유로든 뇌가 다치면 발병하기도 한다. 경과는 치명적이다. 죽을 확률도 높지만, 살아남더라도 뇌가 제 기능을 할 확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여러 치료방법(스테로이드, 항경련제, 저당식단 등)으로 완치가 가능하기도 하나 대부분 심각한 발달 지연과 퇴행, 뇌전증을 동반한다.


사무엘의 몸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아빠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고 착각할 만큼 사무엘은 아빠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사무엘의 뇌에서는 짧고 강력한 뇌파가 계속 일어나 팔과 다리가 굳어지고, 움찔거리고, 또 눈은 한 곳을 응시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멍하니 바라보는 사무엘과 눈을 맞추려 애를 쓰고 있었다. 나를 바라볼 수 없는 내 아이의 눈빛을 참아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내 아이의 눈이 나를 담아도 인지할 수 없다니… 멈추지 않고 계속 움찔거리는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한가.

아기가 발작 증세를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유아성 경련 환자라면 입장이 달라진다. 사실, 경련을 보이는 아기에게 치료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약을 투여해 비정상적인 뇌파를 멈추고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경련은 아기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여서 지금 멈추더라도 다시 돌아온다. 다만 치료함으로써 마취한 듯 뇌를 잠재워 며칠 동안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치료하자면 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인 치료라 할 수 없는 반창고 같은 치료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결국,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나 이 광경을 참아내기 힘든 의료진을 치료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고요한 병실 안의 침묵이 묵직하게 이어졌다. 사무엘의 아빠와 나는 아이의 머리에 팔에 다리에 또 배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사무엘,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빨리 나아서 아빠와 엄마의 사랑에 웃음 짓는 날이 오면 좋겠어.’ 가슴에서 쏟아진 말이 내 손을 타고 사무엘의 머리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스미스 부부는 며칠 전 신경과 상담을 받은 후로 눈물 흘리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을 닦을 티슈를 건네는 일 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라도 이런 병명과 경과를 듣는다면, 그리고 그에 따른 미래를 상상한다면, 암담한 마음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미스 부부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사무엘의 곁을 지켰다. 그런 스미스 부부가 염려되어 회의가 끝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찾았다. 사무엘은 엄마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오늘은 사무엘을 꼭 안아주고 싶어요. 가능하면 하루 종일 제가 안고 있을래요.”

필요한 테스트를 위해 등에 바늘을 넣어 척수액을 뽑아야 했다. 간절해 보이는 사무엘 엄마의 눈빛을 앞에 두고 차마 안 된다고 할 수 없어 테스트를 미루겠다고 했다. 잠시나마 엄마의 얼굴에 안도의 핑크빛이 돌았다.

“걱정 마세요. 내일이나 모레에 해도 치료나 진단에 큰 무리가 없을 거예요.”


주저하는 부모를 안심시키고 병실을 나섰다. 닫힌 문 뒤로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복도 창 밖으로 햇살이 부서져 조각조각 들어오고 있었다. 성큼 들어온 햇살이 사무엘의 미래에 희망이 되어줄지, 그 햇살만큼 사무엘의 시간도 사라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햇살 한 조각에 내 희망과 다른 한 조각에 사무엘의 보이지 않는 꿈과 미래를 달아 띄워 보냈다. 저 높이 하늘 위로는 기묘하게도 회색빛의 구름과 새하얀 구름이 서로를 배회하듯 떠돌고 있었다. 우리의 슬픔이 증발해 먹구름이 되었을까. 막상 사무엘은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기만 한건 아닐까.

사무엘의 경련이 한참 이어졌다. 다른 응급 상황에 호출되어 잠시 사무엘과 가족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병실 안에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긴 경련을 보다 못한 엄마가 사무엘의 작은 침대 안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아이를 뒤에서 꼭 안고 있었다. 세상 모진 풍파 다 내가 막아줄 테니 너는 행복하기만 하라는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엄마의 아픔이 그녀의 등을 타고 병실 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해져 왔다. 


“이제 그만 치료약을 줄까요?”

치료하고 싶은, 이타심을 가장한 이기심의 말이 나오려다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 속도만큼 빠르게 들어갔다. 다섯 발자국 남짓의 거리가 내 참담한 무력함에 저항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계속 경직되는 다리와 움찔대는 팔을 휘저으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듯했다. 엄마는 그 고독한 싸움을 옆에서 지키며 가만히 안아주고 있었다. 황제펭귄은 몇 달을 쉬지 않고 알을 품는다. 주변에 있는 눈만 섭취하면서 굶은 상태로 자신의 아기를 돌보는 부모. 혹독한 남극의 기온을 버텨내며 높지 않은 부화 성공률을 이겨내고 정성으로 키우는 부모. 한 순간도 사무엘의 곁을 떠나지 않던 스미스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소중하게 품고 지켜온 아기가 온몸을 떨며 주변의 어느 환경도 인식하지 못한채 누워만 있다니. 아름다운 엄마의 뒷모습에 무력함이 더해져 아픔만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 누구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어떤 엄마도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뒷모습이었다.


photo: Getty Images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45681?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6/0000048390?sid=102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030.html?_ga=2.81707538.40207709.1688839030-1045336553.16871417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77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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