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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Jun 25. 2023

차고에서 태어났지만 최고의 양부모를 만난 아기

한겨레21 연재중입니다.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교수님, 지금 10시 반 예약 환자가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어요. 꽤나 늦게 늦어질 텐데 진료 보시겠어요?”

“한 시간이나 늦었다구요? 어쩌다가요? 혹시 예약 취소하거나 오지 않은 환자가 있나요?”

“옆 병원 주차장에 가서 한참이나 해맸나봐요. 위탁 부모인데 아마 오늘 진료가 취소되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요. 다행히 한 환자가 취소했어요.”

“우리 팀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괜찮다고 하면 진료 보도록 하죠.”


이미 아침 8시부터 한두시간씩 걸리는 발달 테스트를 받는 아기들이 속속들이 도착해 한창 진료를 보고 있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영양, 발달, 사회 환경까지 점검 받는 환자들의 복잡한 차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더불어 연속적으로 진료하고 회의를 통해 진료계획과 자잘한 보험, 재정 문제까지 해결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쁜 와중에, 한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환자까지 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위탁 가정인데다가 작은 실수로 한 시간이나 늦어버린 위탁모의 심정을 헤아려 진료를 보기로 했다. 예약 환자 리스트를 클릭하자, 익숙한 이름이 떴다.


‘베이커(가명), 남자 아이’


햇살이 밝게 비치던 한낮에 어두침침한 차고에서 태어난 세바스찬(가명)은 앰뷸런스를 타고 우리 병원으로 실려왔다. 신생아 중환자실 한쪽에서 회진을 돌다 전화 한 통에 최대한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뒤로하고 뛰었다. 치료실 문을 열자 축 쳐져있는 작디작은 미숙아가 나를 맞이했다. 입을 열고 재빨리 기도 삽관 튜브를 넣어야 했다. 신생아 중환자실로 손수 데리고 와 꼬박 몇 달을 정성을 다해 치료했다. 세바스찬의 엄마는 여의치 않은 상황에 곧바로 입양을 선택했다. 안아주는 부모가 없어, 아기 상태를 전달해 줄 부모가 없어 더 마음이 쓰였다. 그러던 중, 퇴원날이 다가오고 드디어 위탁부모가 정해졌다. 퇴원 당일 아침, 위탁 부모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보장사의 전화를 받지 않던 위탁 부모는 정부 사회보장사에게 마지못해 전화를 걸었다.

“아기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요. 겁이 나서 도저히 아기를 데려갈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세바스찬의 머리에는 작지 않은 뇌출혈이 있었다. 미숙아인데다 병원에서 태어나지 않아 필요한 치료를 곧바로 받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팔다리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주먹을 꼭 쥔 두 손을 좀체 펴지 않았다. 위탁 부모는 세바스찬을 실제로 보자 마주해야 시련의 강이 깊음을 감지했다. 결국, 위탁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것을 거부했다. 다시 다른 위탁 부모를 찾기까기란 쉽지 않았다. 


환한 형광등이 비추는 중환자실 문 앞에서 붉은 기가 도는 금빛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핑크빛 미소를 가진 중년 여자를 마주쳤다. 그 미소가 따뜻해 금세 알 수 있었다. 우리 세바스찬을 안아줄 사람이라는 것을. 


신생아 분과 교수 중, 외래를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대부분 내래 진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외래 진료를 즐겨하는 의사였다면 소아과 레지던트 생활 3년을 마치고 소아과 의사로서 외래 진료를 볼 수 있다. 다시 3년 동안 신생아 분과 펠로우로 숨넘어가는 마라톤을 다시 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즐겨하지 않는 외래도 가끔 기대감에 차기도 한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며 치료한 아기들이 쑥쑥 자라 돌아오는 광경은 고된 일을 뿌듯함으로 완성해 주는 약과 같은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외래 환자를 보는 동료 교수가 자리를 비워 이틀 동안 대신 외래 환자를 보게 되었다. 대부분 태어나면 보통 엄마의 성과 남자 아기 또는 여자 아기 라고 칭해지는 신생아 중환자실 아기의 이름은, 퇴원을 기점으로 실제 이름과 성 (대부분 아빠의 성)으로 바뀐다. 그래서 이름만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세바스찬은 위탁 가정으로 퇴원했기에 같은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태어나서 만난 첫 의사가 나였는데, 외래 클리닉에 처음 왔을 때 만난 첫 의사가 또 나일수도 있구나.’

세바스찬과 나의 인연은 얼마나 특별하고 질긴 것일까. 대부분의 아기는 태어나서 만나는 의사가 99.9%는 산부인과 의사일 것이다. 하나, 세바스찬은 집에서 태어나 앰뷸런스를 타고 이 병원에 와 나를 만났다. 외래 클리닉 전담 교수가 잠시 없는 사이에 이곳으로 와서, 웬만해서는 늦은 환자를 보지 않는 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나를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가운 마음에, 여러 테스트와 상담 뒤 마지막에 들어가는 의사의 의무를 뒤로 하고, 한 엄마로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세바스찬! 그동안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인사를 마치기 바쁘게 나를 보며 까르르 웃는 세바스찬의 웃음에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의 감정이 치솟았다. 내 아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보다 더 큰 행복이 나를 덮쳤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세바스찬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자신이 낳은 6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세바스찬의 위탁모는 곧 세바스찬을 정식으로 입양할 계획을 밝혔다. 세바스찬의 생물학적 엄마가 지어준 이름, 세바스찬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세바스찬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사지 경직이 더 심해져, 약을 두 가지나 더 추가해서 복용하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갖가지 테스트와 상담, 진료를 마치고 앞으로 더 필요할 재활 치료를 오더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도 알려주며, 앞으로 더 심해질 수도 있는 경과도 전해야 했다. 

“아이들이 세바스찬을 너무 예뻐해서, 여섯 명이 돌아가며 안아주고 놀아주고 있어요. 바닥에 누일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예요.”

사랑스러운 눈길로 세바스찬을 바라보며 툭 던지는 말에, 왈칵 눈이 나올 뻔했다. 차고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곧바로 치료를 받지 못해 뇌에 평생 남을 손상이 남았다. 생물학적 엄마도, 첫 번째 위탁 부모도 포기한 세바스찬. 출생과 함께 온 불행은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완벽한 위탁 가정을 만나 입양될 축복으로 바뀌었다.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3953.html?_ga=2.158452218.1723346867.1687642767-1045336553.16871417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6420.html?_ga=2.153748344.1723346867.1687642767-1045336553.168714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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