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지 못하는 아기를 도와줄 수 없었다.
어떤 아기들을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다. 폐나 두뇌 심장 다른 장기에 큰 문제가 있어 탯줄을 자르자마자 죽는 아기들이 있다. 간혹 모르기도 하지만 임신 중 검사로 알기도 한다.
이 아기도 그런 케이스였다. 20 주에 실행된 초음파 검사로 뇌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또 심장 그리고 무엇보다 횡격막이 잘 자리잡지 않아 위와 간 또 장들이 흉부에 자리 잡아 폐가 잘 발달하지 못한 아기였다. 많은 의사들과 상의한 아기의 부모님은 아기를 낳은 후에 자연스럽게 보내 주기로 결정했고 이런 경우에는 소아과 신생아분과에서는 관여를 하지 않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출산 시 와달라고 부탁했다.
3 키로 정도의 겉으로 보기에는 잘 자란 아기가 제왕절개로 태어났고 큰 울음을 내질렀다. 탯줄을 바로 자르자 곧 아기는 질식하며 괴로워했다. 숨을 쉬면 위와 장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그 영향으로 폐가 팽창할 수 없도 가뜩이나 덜 발달된 폐로 산소를 공급할 수 없는 아기는 금방 숨을 거두었다.
분만실에서 숨 쉬지 못하는 아기들을 돕는 게 나의 일인데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도와줘도 결국에는 고생만 하다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참 마음 아팠다. 아기를 부모님에게 안겨주고 몇 번 다시 돌아가 그들이 괜찮은 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울부짖던 그들이, 지금은 필요한 게 없는 데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던 아기 아버지의 얼굴이, 그 참담한 표정이 가늠할 수 없이 슬픈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분만실에서 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삶과 죽음 경계에 선 아기들을 또 부모님들을 자주 마주친다. 어떤 경우에는 나의 도움으로 사는 경우가 있고 (물론 나는 도구이지만) 또 내가 무엇을 해도 신이 아님으로 도와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결과가 어떻든 그 갈림길에 자주 서다 보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압도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건 그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더 꼭 안아주는 것밖에는 치료가 없는 나만의 슬픔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