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Apr 23. 2024

만년필 하나 있는데 만년필 박람회 다녀온 사람

접니다 저요

만년필 하나 있다. 북파티에서 선물 받은 만년필 한 자루. 그럼에도 만년필 박람회에 다녀왔다. 신세계였다. 학회나 의학 관련 행사에서나 보던 보따리 아니 테이블 장수들이 너무 많았다. 나보다 오래 산 만년필 그리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분들. 거기에 열정적인 참석자까지. 캘리포니아 만년필 박람회라 캘리포니아에서 많이 온 줄 알았는데, 외국이나 다른 주에서 온 사람이 더 많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친구를 졸졸 따라다녔다. 친구는 만년필 덕후라고나 할까. 만년필에 관해서라면 모두 다 아는 것만 같았다. 한정판 만년필이나 신상 만년필까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만년필이 너무 비싸서 놀랐는데 친구는 박람회 가격이라 좀 싼 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몇백 불하는 만년필도 몇 자루나 척척 샀다. 잉크는 너무 많다고 안 사겠다더니 잔뜩 샀다. 나보고 자길 말리라더니, 아이를 픽업해야 해서 내가 떠난 뒤에도 하나 더 샀다고 문자로 고백했다.

멀리 인도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만년필을 들고 오신 분도 있었다. 방글방글 웃으시면서 멋진 제품을 소개해주셨다. 그의 눈 안에서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열정이 보였다. 본인의 개인 소장품까지 파시는 분도 많았다. 하지만 직접 만든 장인의 눈에서는 뭔가 다른 뜨거움이 있었다. 손에는 그 열정의 산물인 만년필이 있었다. 그 만년필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손이었다.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진 만년필을 감싼 그의 손은 투박하고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손, 그 자체였다. 반짝이는 눈으로 만년필에 대해 소개해주는데 난 그의 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에게도 손은 정말 중요하다. 내 두 손으로 아기를 검진하고 시술도 해야 한다. 아마 두 손을 쓸 수 없다면 일을 할 수 없으리라. 소아과는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신생아분과는 포기해야 한다. 그에게 그의 두 손은 어떤 의미일까. 그가 만년필을 만들 수 없다면 그는 다른 취미나 활동으로 그 불타는 열정을 옮겨갈까. 나도 그런 비슷한 열정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a57089a3b67242db?nav_hidden=y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0706582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3149852




작가의 이전글 물방울: 높은 산에는 눈, 낮은 산에는 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