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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Mar 02. 2024

나의 아버지

 


“저기 봐. 꽃이 피어있어.”


담담히 사실을 말하는 입술이 바싹 말라있었다. 얼핏 봐도 곧 죽을 사람의 얼굴이었다. 창백하고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살이 너무 빠져 얼굴에는 피부만 남아있는 사람. 몸에 지방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사람 밖으로 나온 소리였다. 그때는 몰랐다. 이미 몇 달간 말라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익숙해져 알 수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살이 빠지면 곧 죽는다는 것을. 온몸에 퍼진 암이 아버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어려서 또 지나친 이상주의자라서 전혀 몰랐다. 내가 나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굳게 믿고 있기에 신이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 자신을 내어주고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라 설마 신이 일찍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병실 창 밖을 살피니 곧 타올라 사라질 것만 같은 자줏빛 철쭉이 한쪽 언덕에 드물게 피어있었다. 왠지 유명한 소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한 장면인 것만 같아 불길한 느낌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도 한순간, 그 꽃무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함께 그 꽃의 장경한 아름다움을 마음에 새겼다.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추억 앨범의 한편에 꽃이 새겨졌다.


머리를 빡빡 민 고등학생이었던 아버지는 갑자기 6개월 간격을 두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동네 선산에 묻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돌도 안된 막냇동생을 포함한 육 남매의 가장이 되었다.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이겨내고 우뚝 설 수 있었다. 어머니도 육 남매가 함께 사는 집으로 들어와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 어렸던 육 남매의 가장이 이제 사 남매를 낳아 기르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행복했을까. 아니면 그 책임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까. 첫 딸인 나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를 보았다며 환히 웃었다고 하신 아버지 친구분의 말처럼 조금의 행복함이 그 무거운 어깨의 짐을 덜어줬을지도 모르겠다.

그 행복이 조금 더 길었으면 나의 행복도 풍선처럼 부풀어 하늘로 날아갔을 텐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하늘로 떠났다.


매일 아이들에게 점심을 싸주며 그 안에 손 편지를 넣어 주는 나의 남편(아직 글을 못 읽는 둘째 아이에게는 그림 반 글 반으로 편지를 채운다)을 두 눈으로 목도하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첫 딸이라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특별한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외국에서 급히 귀국하신 친척들을 보고도 그 급박함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아마 어린 우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았으리라. 아버지의 시계가 곧 멈출 것이라는 것을. 컴컴한 어둠을 뚫고 도착한 병원 안의 아버지의 병상은 비어있었다. 임종실에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인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나의 파랗기만 하던 세상이 온통 컴컴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 안에서 가끔 웃었지만 수도 없이 울었다. 터널이라면 조그마한 빛 하나에 의지해 어떻게든 헤쳐나가볼 텐데. 앞도 뒤도 나 자신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함만이 존재했다. 그래서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울었다. 아마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라면 어디선가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퉁퉁 부은 내 두 눈을 한 번쯤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암흑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 그 끔찍한 어두움을 아는 사람이라 그 상실을 곧 경험할 또는 경험한 아기의 가족들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통은 계속 이어지지만 괴로움을 버릴 수 있음을 책을 통해서 배웠다. 가끔은 아는 것이 전부다. 괴로움이 선택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드디어 괴로움을 버릴 수 있는 슬픔의 진정한 생존자가 될 수 있었다. 겪지 않은 고통은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고통을 겪었고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기의 가족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 그 고통과 괴로움, 후에 겪은 성찰까지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버지의 유산이 살아 나와 함께 하고 그 사랑이 이어져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안아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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