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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Mar 15. 2024

긍정의 힘

환자를 살리는 의료진의 긍정 에너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을 포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만큼 자드락비가 끊기지 않던 아침이었다.

'이까짓 비로 일을 안 갈 순 없지.’

공기를 써는 듯한 비를 뚫고 무작정 차를 몰았다. 겨우 출근한 나를 맞은 건, 곧 죽을 것 같이 아픈 아기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못 넘길 것 같아. “

동료 의사, 간호사, 호흡치료사 모두 시커먼 하늘 같은 전망만 내놓았다. 창밖으로 비가 유리창을 깰 듯 두들기고 있었다. 자꾸 우는 아기 보채듯 다급함이 빗줄기 하나하나에 실려있었다. 아기는 그 빗소리에 금방이라도 답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이 아기가 꼭 살 것만 같아, 아니, 꼭 살리고 싶어 더 많은 의료진을 불렀다. 여러 호흡치료사의 도움으로 인공호흡기도 조절하자 꼬꾸라졌던 생체징후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숙련된 호흡치료사를 따로 불러 석션도 하고 앰부백도 짜보며 여러 가지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가래가 끼어있었던 것 같아요. 앰부백 짜기가 한결 편해졌어요.”

“다행이네요. 이 약도 한 번 시도해 보죠.”

여러 사람이 머리를 한데 모아 아이디어를 짜내니 아기가 좀 더 좋아졌다.


수간호사에게 부탁해 간호사 두 명을 더 배정받았다. 내가 오더한 약도 달고 이미 들어가고 있는 강심제를 제 때 조절하니 잡히지 않던 혈압도 잡히기 시작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은 아기라 이미 두 명의 간호사가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수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새로 투입된 간호사들은 아픈 아기를 주로 다루는 간호사들이라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필요한 처치를 하고 있었다.

“스텔라, 아기 좀 나아졌는데 좀 가서 안지 그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지? 가서 밥도 좀 먹고 물도 마시고.”

동료 의사가 하루종일 그 병실에 장승처럼 서서 자리를 지킨 나에게 물었다.

“아냐, 괜찮아. 배고픈지도 모르겠어. 좀 더 나아지면 그때 가서 먹을게.”

아기는 나아지는 것만이 내 목표였다. 아기가 살 수 있다면, 아기가 나아질 수 있다면 일주일이라도 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나아졌다고 방심하면 언제라도 악화될 수 있는 아기다. 그래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구름에 가려진 해가 지기 전 어느새 아기는 적잖이 나아졌다. 쓰고 있던 약을 줄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뿌듯했다. 이는 내가 투입한 더 많은 의료진이나 오더 한 약품의 도움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그 병실을 단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강한 긍정의 힘을 내뿜은 결과다. 아기를 살리고자 작은 변화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너만은 내가 꼭 살리리라는 진한 집념 하나로 아기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아기는 살아남아 병원 밖의 삶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이 아기의 부모에게는 얼마나 많은 반짝이는 순간이 찾아올까.


의료진의 긍정적인 태도는 이를 알 수 없는 아기에게만 삶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의 긍정적인 태도는 환자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돕는다. 의료진의 태도만으로도 치료 수행력, 환자들의 만족도, 그리고 치료 결과는 나아진다*. 환자의 불안을 달래주고 신뢰를 높인다. 고로 환자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따르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가 따로 말해주지 않는 것은 바로 긍정의 힘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강한 믿음, 그리고 그에 따른 노력으로 나아질 수 있는 환자, 나아진 환자는 무수히 많다.  


* Boldor, Noga, et al. "Optimism of health care workers during a disaster: a review of the literature." Emerging Health Threats Journal 5.1 (2012): 7270.


덧.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 분들도 많으리라 짐작합니다. 긍정의 힘으로 힘든 일도 이겨내고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긍정의 힘으로 매일 매 순간이 조금 더 나아지면 조금 덜 괴로울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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