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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Apr 24. 2024

상상할 수 없이 크나큰 고통이 다가올 때

최악의 고통이 남겨진 배움

극심한 고통에 딱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출산을 앞두고 무통주사를 간절히 원했다. 마취과 의사의 생각은 달랐다. 혈소판이 낮으면 피가 잘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낮은 내 혈소판 수치에 마취과 의사는 바늘을 등에 꽂는 무통주사를 거부했다. 출혈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마취과 의사와 긴 토론을 했지만, 그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눈빛으로만 그를 조금 미워했다. 그는 약간 미안했는지 아니면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확인하려고 했는지,  병실을 나가기 전 주저주저 손을 씻으며 시간을 끌었다. 그의 불편한 마음이 나에게도 닿아, 그를 미워한 마음이 무색해졌다. 큰 고통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유도 분만제가 떨어지는 수액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진통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또 장렬하게 다가왔다.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르다, 참다못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아니, 살아있는 어느 누구도 이 고통을 느껴서는 안 돼. 전신마취를 해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든, 혈소판 수혈을 하든, 아기를 낳아야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고통을 끝내야 해. 난 지금 깨어있으면 안 돼.”


생전 처음 듣는 나의 처절한 외침에 남편이 덜덜 떨고 있었다. 십 년 넘게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잔가지같이 뻗친 우리의 마음이 서로의 뇌까지 연결시켜 준 것 같았다. 남편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걸어갔다.


“지금 당장 분만시켜 주세요. 저 비명소리 들리시죠? 당직 산부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 당장 불러줘요.”


마취과의가 돌아온 병실 안에서 나의 비명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가 연달아 들어왔다. 비명을 지르다 보니 배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양수가 팍 터졌다. 양수가 터지자 산부인과 의료진은 당황했다. 아직 분만하려면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속한 내진 뒤 산부인과 의사는 내게 재빨리 말했다.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이제 힘을 주세요.”


그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 고통이 끝날 것이라고?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참을 수 없던 고통이 어느새 견딜만한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선을 다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고통은 더 심해졌다. 그래도 견딜만했다.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의 필자는 “끝이 없다는 것.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고통의 끝자락에 단단히 붙어 있는 가장 큰 절망이라는 고통”이라고 부르짖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지금 현재의 고통 그리고 어이없게 따라오는 미래에 대한 절망감. 그런데 방금 전까지 참을 수 없었던 그 고통이 끝을 아는 순간 바로 희한하게도  참을 만한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대한으로 힘을 몇 번 주자, 손꼽아 기다리던 아기가 드디어 나왔다. 아기가 내 가슴에 올려지고 내 몫은 끝이 났다.  내 고통도 사그라들었다. 그러자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의 비명을 견뎌 낸 산부인과 의료진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계속 소리 질러서 진심으로 정말 미안해요.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조절 없이 힘을 줘서 급하게 나온 아기의 머리는 내 살을 다 찢고 나왔다. 이미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은 나의 몸은 몇십 바늘 꿰매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바늘 한 땀 한 땀이 세세히 느껴졌다. 실이 지나가는 길 사이로 드르륵드르륵. 생살 사이를 에어내는 고통도 웃으면서 오롯이 받아냈다.


Patience(인내심)라는 단어는 1200년도 초반에 고 프랑스어 pacience에서 나왔다고 한다. 괴로움을 참는 의지라는 뜻으로 현재에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14세기 중반부터 patient(환자)는 아픈 사람, 또는 단순히 불평하지 않고 고통받는 자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매일 병원에서 주체적인 의사로 일하며 시술을 하다, 갑자기 시술을 받는 대상이 됐다.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주체 subject에서 대상 object이 된 것 같은 기분, 사람이 아닌 사물이 된 것 같은 기분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고통, 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게 끔찍한 통곡의 통각을 그 무거운 의미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다시는 상상할 수 없는,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또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이런 고통은 어느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됨을 배웠다. 심리학과 수업, 신경학과 수업 중에 배운 고통의 이론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왔다. 끝이 나는 고통은 그 앎과 동시에 만 배쯤 나아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런데 끝을 알 수 없는 아기에게는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고통이 가당키나 할까. 언어적인 소통과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아기에게 끝이 없을 것 같은 고통은 얼마나 암담할까. 잠시나마 그 고통의 환란에 다녀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끝이 없는 고통 안에 갇힌 기분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고통도 있다는 것을.


그런 고통을 주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내가 직접 또는 감독하는 수많은 시술과 몇몇 치료 자체가 아기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대한 빠르게, 최소한의 고통으로 시술을 마쳐, 아기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도모한다. 또 의미 없는 고통은 없애려고 노력한다. 내가 하는 치료와 시술이 끝내 죽음으로 끝이 나거나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될 아기에게 고통만 남긴다면, 부모를 설득해 중단하려고 애쓴다. 끝없는 고통과 결과 없는 고통은 어떤 생명체에게도 일어나서는 안되기에. 특히나 자신의 고통을 정확히 표현할 수도 그 고통의 이유와 끝을 알 수 없는 아기에게는. 사랑만을 느끼고 받아야만 하는 작은 생명체에게는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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