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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Apr 16. 2024

소아과 그리고 신생아분과를 선택한 이유

핑크빛 아기들과 깜찍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곳

직종이나 전공을 대표하는 성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예컨대, 친절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소아과, 직설적이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는 외과에 많다.(물론 전공을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성격의 의사도 많다.) 대학교 재학 당시, 의대에 진학해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나에게 동기 알렉스Alex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신과? 우리 아빠가 정신과 의사라, 어렸을 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정신과 의사를 봤어. 정신과 의사들은 하나같이 특유의 ‘이상함’이 있어. 그 ‘이상함’으로 환자들과 이어지고 소통하는 것 같아. 넌 그게 하나도 없어.”


무척이나 확신에 차 내뱉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신과 의사의 꿈도 잊었다. 대학교 시절 매주 봉사하던 응급실에 매료되어 한때는 응급의학과를 원했다. 어느덧 의대 3년 차(미국에서는 보통 대학교 4년, 의대 4년을 다녀야 의사가 된다. 의대 1-2학년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3-4학년은 병원에서 실습을 한다.), 드디어 병원 실습을 시작했다. 새로운 과를 갈 때마다, 그 과에 사로잡혔다. 진단을 내리고 시술도 하는 피부과도 잠시 고려했다. 한동안 내과에도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다 소아과 실습을 시작했다.

소아과는 아름다웠다. 작고 귀여운 아기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런 환자들을 환자로만 보지 않고 자신의 아이인 양 사랑으로 치료하는 소아과 의사들. 삭막한 내과에서 어른들만 상대하다 와서인지 온통 무지개 빛이었다. 간호사부터 시작해 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진이 너무나 친절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주변 환경도 놀이 공원처럼 꾸며 놓으니 아무도 없는 병동(종합병원 안에서 내래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는 곳)이나 클리닉(주로 외래 환자를 보는 곳으로 큰 병원 안에 위치하기도 하고 다른 건물에 있기도 하다.)에 들어만 가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로 수놓아진 벽, 하얀색 대신 파스텔 색깔로 뒤덮인 벽, 병원의 삭막함이 귀여움으로 대체되어 있는 곳. 그 안에서 서있기만 해도 행복함이 발끝부터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물론 진단과 치료가 더해져야만 나의 역할이 완성되지만, 내가 마주하는 환자 군과 그 가족들을 사랑하니 일이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출근하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인생 초기부터 생명을 구하고 진단을 내리며 치료하면 아이들의 인생이 완전하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보다 더 큰 상이 있으랴.


더구나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해서 죽을 둥 살 둥 하다가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건강하게 퇴원하기도 했다. 어설픈 의대생의 눈에도 아기들의 회복력은 대단했다. 내과에는 자신의 선택 또는 치료 거부로 질병을 얻거나 낫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병이 있는데도 약을 먹지 않고 진료도 보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약물중독으로 병환이 깊어진 환자는 내가 설득하려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 찾아가기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아무리 내가 정성을 쏟아도 협조하지 않는 환자는 낫지 않는다. 예일 의대 교수 버니 시겔Bernie Siegel이 저서  <Love, Medicine, and Miracles(사랑, 의학, 그리고 기적)>에서 밝혔듯, 고칠 수 없는 병은 없지만 치유할 수 없는 사람만 있는 곳이 내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과 실습은 뿌듯함 보다 좌절감을 많이 남겼다.

반대로 소아과는 환자의 잘못으로 아픈 일이나, 낫지 않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태어나서, 혹은 부모의 잘못으로, 또는 사회의 부족함으로 아픈 아기와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끌렸다, 질병과 싸우는 아이들, 그저 무력한 아기들에게. 돕고 싶었다. 내 몸을 갈아서라도 그들이 더 오래 편안히 살 수 있다면 가치 있지 않은가.


소아과 수련(레지던트 과정 3 년)을 마치고는 신생아중환자실(펠로우 과정 3년)로 향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찍 태어나서, 또는 선천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단지 불운이 따라서 아픈 아기를 구하고 싶었다. 갓난아기의 생명을 구하고 아기들이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게 힘을 보태는 일이 즐거웠다. 물론 놓치는 생명으로 슬픔에 빠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심히 아픈 아기를 편안하게 보내주고 가족들을 안아주는 일은 부름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진정한 공감을 바탕으로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소명을 받았다. 무엇보다 힘든 여정 중에 아기의 가족이 행복을 느끼고 그 길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신생아중환자실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바라만 봐도 사랑이 샘솟는 아기들과 매일을 함께 할 수 있다니. 소아과, 그중에서도 특별한 신생아중환자실이 나를 간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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