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둘째 아이입니다.
어떤 불의도 용납하지 않는 자.
불의를 참지 않고 항의하는 용사.
자신뿐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가해지는 놀림을 두고 보지 않는 정의의 사도.
바로 내 둘째 아이, 브라이언이다.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누나 그렇게 놀리지 마세요."
"아빠한테 그러지 마세요."
내가 조금이라도 차가운 말투로 브라이언에게 아니, 벨라나 아빠에게 말을 하면(실제로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데!) 곧바로 저항을 쏟아낸다. 어디 무서워서 훈육도 못하겠다. (오은영 박사님께서는 훈육은 단호하게 하지만 다정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난 단호가 단단한 말투로 나오는 것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토록 단단한 사람도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세상에서 가장 자존감 높은 이가 바로 내 둘째 아이일 줄이야. 객관적으로 봐도(물론 객관적이 되긴 어렵지만) 무척이나 귀여운 데다 다정하고 애교도 넘친다. 사랑도 넘쳐 주변을 잘 챙기고 자신에 대한 사랑 또한 넘친다.
집 안팎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자존감이라는 것이 있는지 이 아이의 자존감이야 말로 하늘 높이 치솟는다.
어린이집에서 큰 사고가 없었는데 어느 날 브라이언을 픽업하는데 선생님께서 부리나케 뛰어오신다.
"아버님께 이야기 들으셨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이에요."
"네?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큰일은 아니고요. 친구가 브라이언 손을 물었어요. 피부를 뚫지는 않고요. 좀 '실랑이'를 벌이다 물었나 봐요. 그래도 브라이언이 정말 잘 대처했답니다. 바로 저희에게 와서 말했어요. 물론 저희는 많이 안아주고 아이스팩도 대주고요."
"네, 알겠습니다."
솔직히 좀 놀랐다. 가끔 브라이언 어린이집에서 같이 놀기도 카메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브라이언은 다정다감한 스타일이라 부탁을 주로 하고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과자, 심지어 초콜릿까지 잘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 '실랑이'라니...
브라이언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친구가 가져가서 다시 달라고 하니 콱 물었다고 했다.
"그랬구나. 많이 아팠겠다. 이제 괜찮니?"
"네, 이제 안 아파요."
하며 보여주는 손 등에 확연한 이 자국이 팍팍팍 보인다. (3일이나 간 걸로 봐서 전혀 안 괜찮아 보였는데도 괜찮다고 해서 더 놀랐다.)
"선생님께서 네가 잘 대응했다고 하시더라. 잘했어, 우리 브라이언."
"아녜요. 저 울었어요. 아파서. 그리고 선생님한테 바로 말했죠."
바로 선생님께 자신에게 벌어진 불의(?)를 보고한다는 데에서 또 놀랐다. 보통 네 살 배기 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거나 친구에게 앙갚음을 해주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잘했어. 다음부터도 선생님께 말해. 친구가 장난감이 너무 가지고 싶었나 보다. 친구가 잘못해도 용서해 주는 것도 해야 할 일이야. 그래도 앞으로도 잘 어울리고."
마음 같아서야 그 아이랑 놀지 마! 하고 싶었지만 나도 잘 못하는 '용서'를 가르쳤다. 어린 아이라 잘 모를 테지만.
이런 작은 일로 자존감을 논한다는 게 극성 엄마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자존감 1위는 지금도 앞으로도 브라이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