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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Oct 03. 2022

한 시간 안에 의사 9명 모아서 엄마+아기 수술하기

어서 오세요 산모님 주말 밤에 연락 없이 오셔도 바로 수술해 드립니다

정말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부인과에 내려갔는데 난리가 나고 있었다. 한 산모가 진통이 온다며 곧 낳을 것 같다고 걸어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차트를 보니 태아 목에 큰 혹이 있다고 난리가 났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로 산소를 공급받아 숨을 쉴 필요가 없다.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기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쉬여야 한다. 만약 목에 큰 혹이 있어 기도가 막히고, 숨 쉬는 게 힘들어지면 우리는 기도 삽관을 해서 생명의 첫 번째 원칙, 산소를 공급해줘야 한다. 큰 혹이 있으면 기도삽관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가족은 집에서 낳는 자연주의 출산을 고집했다. 산부인과 의사 밑에서 일하는 출산 보조사와 함께 집에서 하는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42주가 넘어가자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초음파를 다시 했다. 그런데 20주, 35주에는 보이지 않았던 큰 혹이 보였다. 고위험 산부인과 의사가 엄마를 보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더 세세한 영상, MRI를 오더 하지도 큰 병원으로 전원시키지도 않았다. 다른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 큰 병원에서 분만하라고만 했다. 평화로운 주말 밤, 자연주의 출산 계획이 빽빽이 적힌 서류를 잔뜩 들고 출산 보조사와 아기 아빠와 함께 엄마는 나타났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제정신을 가진 의사가 한 진료라고는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집에서 출산하지 않고 권고한 대로 큰 병원에 온 것이다. 나는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수간호사에게 알리고 입원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비인후과 교수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도 현 상황에 혀를 끌끌 찼지만 아기를 살릴 수 있으면 살리자고 했다. 그다음 한 시간 동안 나는 10 통이 넘는 전화를 넣었다.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화를 냈으며 누군가는 나를 측은해하며 도와주었다. 전화를 받은 다른 교수들, 수술실 수간호사들, 또 산부인과 수간호사도 각자 20통이 넘는 전화를 돌렸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자연주의 출산을 고집하던 부모는 모든 시술과 수술을 거부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30분 정도 열띤 설득과 최후의 수단 '엄마카드("나도 두 아이의 엄마예요. 아이를 잃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당신이 아이를 잃게 둘 수 없어요. "등의 간곡하고 감성적인 어필이다. 오로지 엄마인 의사만이 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가족이 그 의사를 좋아하면 더 잘 먹힌다.)'를 쓰고 나서야, 가족은 모든 수술과 시술에 동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9명의 의사와 20명이 넘는 스태프가 큰 수술실에 모였다. 산모에게는 제왕절개 수술을 아기에게는 EXIT(ex utero intrapartum treatment;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탯줄로 산소공급을 받고 있을 때 기도 삽관을 하는 것) 시술을 시도했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기도 삽관이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다른 응급수술을 필요 없었다.

 복잡하고 위험한 시술은  주에 걸쳐 회의와 상담, 그리고 많은 준비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기의 생명을 구했다. 이는 의료진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꽤나 많은 의사들이 주말 밤, 집에서 전화  통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와야 했다. 다른 의료진도 퇴근하지 못하고 남아야 했다. 자신의 일이 아닌 일도 맡아서 해야 했다. 오로지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감수하는 고충은 컸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구했고  따위 고충 따위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 당직실 창밖 너머로 반짝반짝 별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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