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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Oct 12. 2022

30 시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고요?

네 물론 커피는 마셨습니다

자고로 의사란 기나긴 학교 생활과 끝없는 시험, 무엇보다 살인적인 스케줄은 거친 사람이다. 과에 따라 좀 다르지만 수련의 생활은 신체와 정신, 모두를 시험한다.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한 논문은 수련의의 20%는 평균 5 시간도 못 잔다고 밝혔다. 66%는 6시간도 못 잔다고 답했다. 인턴의 평균 수면 양은 5.7 시간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40시간 정도 자는데 아마 당직 중에는 거의 못 잔다고 보면 당직을 서지 않아도 6-7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당직날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아침에 힘차게 출근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엄청나게 아픈 아기가 째깍대는 폭탄으로 나를 맞는다. 그리고 그 상황은 계속 악화된다.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다음 아침까지 계속되는 날이다. 드문 일이다. 하지만 당첨되면 30시간 동안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못한다. 물론 커피는 계속 마신다. 물? 마실 시간도 없고 마시지도 않는다.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 커피를 들이부어도 마신 물이 없어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기적도 생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연속적으로 입원환자가 계속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눈코 뜰 수 없이 바빠 결국엔 밤을 꼬박 새운다. 마지막으로 먹은 밥은 그 전전날이 되는 무시무시한 일이 생긴다. 당직실 문이나 열어 보면 소원이 없겠다. 바쁘게 중환자실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슬프지만 우스운 일이 벌어진다. 다행히 나의 건강한 간에서 당을 계속 만들어주니 쓰러질 일은 없다. 다만 첫째 임신 중에는 몸의 상태가 여의치 않아 정신이 살짝 나갔다 돌아온 적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불쌍한 인턴에게 배지를 주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음료 심부름을 시킨 일이 있다. 당이 떨어져 곧 쓰러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임신하지 않는 몸이 되어 그런 불상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30시간을 꼬박 깨어서 기아 상태를 유지하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것 같다. 하나 눈앞에서 아른 데는 사신으로부터 환자를 지켜내야 한다. 또 주변 의료진의 끝없는 요청을 받아내야 한다. 완벽한 인지활동이 가능하다.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게 발휘한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을 때 더 크게 발현된다더니. 역시 못할 일은 없다.


교수를 달고 나서는 좀 나아졌을까? 그렇기도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나마 자잘한 오더나 단순한 차트 정리는 레지던트와 펠로우가 해준다. 그래서 최소한 침대에 눕는 횟수는 좀 늘었다. 그러나 책임감이라는 것은 자는 사람도 번쩍 일으키게 하는 재주가 있다. 결국 눈뜨고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아졌다. 혹시나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까 봐. 또는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치료를 했었어야 했나. 끝없는 후회와 자기 각성 등으로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도 않다. 자도 금방 깨는 밤이 늘었다.


죽음이 지척에 있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배운다. 생과 사는 앞뒤 가리고 오지 않는다는 것. 나에게 주어진 시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살려고 매번 노력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그것도 잠깐이다. 되지도 않는 후회와 쓸모없는 걱정으로 점철된 낮과 밤을 보낸다. 아무래도 가슴이 머리보다 앞서는 밤에는 더욱더 심해진다.


언젠가 마음 편히 잘 수 있을까. 가끔은 용맹하고 철없던 수련의 때가 그립다. 수련의라는 명찰 아래 대부분의 실수도 눈감아진다. 어떤 참사도 결국엔 교수의 책임으로 끝이 난다. 그 참담한 책임을 이제는 내가 지고 있다. 단순히 실수와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실수를 마지막으로 잡아채고 있어야 하는 위치에 서있다. 함의 선장이라면 침몰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이라도 주어질 텐데 환자가 죽어도 나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열리는 지옥은 달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날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훨씬 더 길고 힘든 수련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산 날이 이제는 조금 더 많은 미국 동포이기에 이렇게 겨우 30 시간 가지고 부끄럽게 불평을 해 봅니다. 한국 의사 선생님, 모두 존경합니다. 저는 아마 의대는 졸업은커녕 입학도 못했을 것입니다. 혹여나 기적적으로 의사 면허를 따더라도 수련하다가 찾을 수도 없게 도망가는 수련의 중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Baldwin Jr, D. C., & Daugherty, S. R. (2004). Sleep deprivation and fatigue in residency training: results of a national survey of first-and second-year residents. Sleep, 27(2), 21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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