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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Dec 13. 2022

제 안에 지금 태풍이 몰아 치고 있어요

내 심박수가 환자의 두 배 세 배 네 배가 되는 순간

“하나 두울 세엣 숨 쉬고, 하나 두울 세엣 숨 쉬고.”

“자, 이제 심장 박동 수가 어떻게 되죠?”

“아직 60 미만입니다.” (아기는 보통 심박수가 어른보다 높아 높게는 180 낮게는 80까지 내려간다. 60 미만은 쉽게 말해 코드 블루, 우리는 코드 화이트라고 부르는 응급상황이다.)

“다시 심장 압박 시작하세요. 지금 3 분 됐죠? 두 번째 에피네프린 투약하세요.”

“현재 2시 23분, 두 번째 에피 들어갔습니다.”

“네, 이제 30 밀리 수액 투여해 주세요.”

“하나 두울 세엣 숨 쉬고, 하나 두울 세엣 숨 쉬고, 하나 두울 세엣 숨 쉬고…”

구령에 맞춰 손바닥보다 작은 아기의 가슴이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린다. 온몸이 다 반동으로 몸부림치는 듯 보였다. 마지막 삶의 몸부림이 이런 아련하고 슬픈 춤사위일까. 시퍼렇게 못해 보랏빛이 돌았던 아기의 심박수가 올라오고 산소포화도도 아지랑이 피듯이 사뿐히 올라왔다.

“이제 심장 압박 중지하시고, 인공호흡기에  연결해 주세요.”

급박했던 상황이 멈추고 잠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자, 한 간호사가 와서 살짝 어깨를 감싸며 안는다.

“침착하게 이끌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짝 눈웃음을 답했다.


응급상황이 있을 때마다 간호사들은 나 보고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의사와 달리 차분하게 대처한다고.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생각한다.

‘네, 맞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캄캄한 죽음이 보이는데 저는 침착하게 처치를 하고 오더를 내립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지금 만개의 소용돌이가 있어요. 제 심장 박동수가 보통 50-80 정도예요. 격한 운동을 해도 140 이상 잘 안 올라가는 제 심박수가 지금 거의 160입니다. 가뜩이나 부정맥이 있는데 잠깐 부정맥이 온 건가 해서 배에 힘을 꽉 줘봤죠. 평소 같으면 바로 정상화되는 심박수가 떨어지지 않아서 이제야 내가 흥분한 상태임을 알았어요.’

나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두렵고 떨리지 않을 까. 물론 마음 같아서는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다. 도망가고 싶기까지 하다. 수백 명 앞에서 논문 발표를 하는 것보다 떨린다. 실제로 손이 덜덜 떨리고 목소리가 쪼개질 때도 있다.


평소 발갛던 아기의 피부색이 점점 시퍼렇게 변해가고 회색빛으로 변한다. 잠시나마 버티던 심장박동수가 점차 떨어진다. 간호사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벽에 붙어있던 빨간 버튼을 가까스로 누른다. 신생아중환자실 안에 있는 모든 병원 휴대전화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요란한 소리를 쏟아낸다. 당직실에 있던 의사들도 시끄러운 비명을 지르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중환자실로 내달린다. 병원 곳곳에서 다른 업무를 보던 의료진도 귀를 찌르는 소리에 뛰쳐나와 중환자실로 향한다.

이미 시작된 심폐소생술에 담당의사는 리더라는 스티커를 가슴에 붙인다. 가볍고 작은 스티커의 무게가 생명의 무게로 느껴져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간호사들과 호흡 치료사들은 역할을 분담하고 약사가 뛰어오면 정확하게 약품을 빛의 속도로 덜어내 간호사에게 건네준다. 담당의사는 최소한의 시간 안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 최고의 속도로 두뇌를 작동해야 한다. 갑자기 악화된 환자의 이유. 반드시 찾아야 한다. 높은 빈도의 이유부터 드문 요인까지 차근차근. 하나씩 시도하고 노력하다 보면 드디어 출구가 보인다. 아기의 심장박동수가 조금씩 올라온다. 피부색도 점차 혈색 빛이 돈다. 모두 가슴을 졸이고 진심을 다한다. 올라오는 심박수와 산소포화도에 탄식 같은 안도의 한숨을 뱉는다. 생사의 경계를 얇은 줄 위를 장대 하나 들고 걷던 아기는 드디어 생의 구역으로 넘어온다. 지난 몇 분간의 백만 가지 생각과 밀도 짙은 걱정은 담당의사의 몇 년 수명을 갉아먹는다.

모두가 똑같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도 생사의 책임은 결국에는 담당의의 손에 떨어진다. 어떠한 재료를 쓰고 누구의 손을 거쳐도 요리의 맛의 성쇠는 셰프의 책임이듯이, 결과는 오롯이 담당의사의 몫이다.


태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용돌이 끝에 남겨진 자상은 더욱 크다. 사무치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가 된다. 담당의사 가슴팍에 붙여진 ‘리더’라는 스티커가 가끔 천금같이 느껴진다. 떼어낼 수 없는 굴레 같이 느껴진다. 응급상황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리더’ 스티커를 뗄 수 있을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반대로 시퍼런 아기의 뛰지 않던 심장이 영영 멎으면 ‘리더 ’ 스티커의 끈끈함 때문에 떼고 싶어도 떼어내지 못하는 못난 의사가 된다. 가끔 아기를 가슴에 안고 우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는 부족한 인간으로 남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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