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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Oct 21. 2022

코가 없는 아기

곧 죽을 운명의 아기의 생을 연장시켰다.

따르르르릉하고 전화기가 영상의학과실의 까맣고 두터운 정적을 깨뜨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기에서는 다니엘의 목소리가 퍼졌다.

“오늘 당직이야? 요새 잘 지내? 어때, 좀 바빠? 아이들은 잘 크고 있어? 전원시킬 아기가 있어서 전화했어.”

“응, 오늘 24시간 당직인데, 무슨 일이야? 아이들은 여전히 잘 크고 있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을 보니, 심각하게 아프거나 급박한 아기는 아니라고 생각해 한숨 돌렸다.

“크게 아픈 아기는 아닌데, 코가 없어.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만 있고 코 뼈가 아예 없어.”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아기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도대체 어떤 모습의 아기이길래 이런 전원이 필요할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전학과 협진이 필요해서 오는 거야?”

“아니, 그러면 이렇게 아침 일찍 전화하지는 않지. 기도 삽관하는 데 내가 한 10번 이상 시도했나? 도대체 들어가지가 않아. 튜브 2.5 사이즈도 꽉 끼어서 2.0을 겨우 집어넣었어. 이비인후과랑 마취과 연락해서 어려운 기도 삽관 도와달라고 해야 할 거야. 오늘 아침에 앰뷸런스 보내줘.”

말문이 막혔다. 다니엘은 동료들 중에서도 시술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어려운 기도 삽관도 잘하고 동맥, 정맥 라인도 거침없이 잘 잡는다. 그런 다니엘이 10번 이상 시도해서 넣은 기도 삽관 튜브가 2.0 이라니.

보통 초미숙아 아기, 500그람 미만의 아기에게도 2.5 사이즈 튜브가 들어간다. 그런데 열 달은 가득 채우고 태어난 만삭아가 2.0 사이즈 튜브를 달고 우리 병원으로 온다니.

 

펠로우와 전원 전담 의료팀을 다니엘의 병원으로 보냈다. 아슬아슬한 기도 삽관 튜브라는 소식을 듣고 중환자실 전체가 긴장감으로 살얼음판이 되었다. 전원전담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총총걸음으로 들어와 아기를 침대 위에 사뿐히 올려놓았다. 보통 만삭아보다 조금 더 작은 아기였다. 얼핏 봐도 머리가 몸에 비해 거대해 조금 기괴해 보였다. 코의 뼈가 자라지 않아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만 두 개 뚫려 있었다. 거기에 구순구개열이 있어 정상적인 부분이 없는 얼굴이었다. 괴이한 형태가 아기의 운명과 버무려져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빨대 같이 가느다란 튜브가 아기를 죽음과 생 사이의 간극을 버티고 있었다. 2.0 사이즈의 튜브는 석션도 할 수 없고 호흡기 관리가 어렵다. 우선 튜브를 최소한 2.5 사이즈로 바꾸기로 했다. 물론 다니엘의 실력을 알고 2.5도 꽉 끼었다는 말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 우리는 최소한의 시도는 해야 했다. 우선 펠로우를 시켜 보았다. 그녀는 이미 있는 튜브가 지나는 길이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가슴이 쿵쾅대고 심박수가 하늘로 치솟았다. 심장이 너무 뛰어 눈이 빠져나올 것 같았지만 침착한 척, 기도 삽관을 시도했다. 다행히 성공이었다. 의외로 여유로운 기도마저 느낄 수 있었다. 친한 호흡기 기사들은 역시 최고라며 치켜세워주었다. 지금 기뻐서 심장이 뛰는지 아니면 실수로 이미 있는 튜브까지 빼버려 아기를 잃을 뻔한 순간이 방금 전이라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협진이 필요한 이비인후과와 유전학과를 호출했다. 이비인후과는 이미 확보된 기도에 흥미를 잃어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유전학과는 호출을 받고 바로 나타났다. 아기를 검진하고 차트를 확인한 유전학과는 바로 병명을 알려주었다.


점상 연골 이형성증이라는 책에서만 보던 진단명이었다. 40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과장님만 본 이례가 있는 드문 병명이었다. 여러 종류가 있는 데 경과가 좋지 않고 곧 죽을 수 있는 병을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뼈에만 이상이 있고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는 병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세밀한 유전학 검사 결과가 나와야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기와 엄마는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가 되어 중환자실에서 갇혔다.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나온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두 돌을 맞기 전에 죽을 것이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비정상적인 코와 기도를 가진 아기는 기도 삽관 없이는 죽음을 맞이할 아기였다. 이미 가족은 버린 아빠 없이, 엄마와의 면담은 계속되었고 이비인후과와 유전학과에서도 아기를 보내주는 것을 권고했다. 처음에는 주저하고 고민하던 엄마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필요한 수술을 하더라도 집에 가는 것을 고집했다. 결국 아기는 목에 구멍을 뚫어 기계가 숨을 밀어주고 배에 구멍을 뚫어 영양이 들어오는 삶만을 살게 되었다.


아기는 수많은 시술과 수술을 받으면서 많은 고통을 견뎌냈다. 입안으로 연거푸 들어오던 차가운 금속 기구. 그 아픔이 가시기 전에 튜브가 따라 들어왔다. 수없이 바늘로 찔리고 핏방울이 몸을 빠져나갔다. 여린 살갗이 메스로 잘리고 또 다른 관이 목구멍을 찔렀다. 배에도 구멍이 뚫리고 또 다른 줄이 들어와 위 안을 채웠다. 집으로 의료 기구가 끝없이 배달되었고 간호사도 배정되었다. 결국 아기는 관과 줄이 연결된 채 병원 문을 나섰다.


아마도 아기는 많이 아팠던 것 같다. 그래서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첫 돌이 되기 전, 그 줄과 관에서 자유로워졌다. 만약 이 모든 시술과 수술을 엄마에게 했다면, 엄마는 똑같은 결정을 했을 까. 조심스레 예상하건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시작했더라도 고통에 부르짖으며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견뎌야 하는 고통의 양과 시간은 최소한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아기의 고통 없는 삶을 위해 싸웠으나 결국 지고야 말았다. 이다지도 슬프고 참담한 패배가 세상에 존재할까. 아기의 소리 없는 울음소리가 이 세상 밖으로, 고통 없이 나가는 길이 있었다. 부족한 의사라, 그 길을 찾지 못했다. 져서 아기를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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