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황 Dec 19. 2020

22-23주 미숙아 치료하기

초극소저체중 미숙아 돌보기

24 주 미만 초미숙아 들은 워낙 경과가 좋지 않다. 살 확률도 희박하다. 살아서도 삶의 질이 좋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아기를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부모가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그런 아기들이 얼마나 고통받는 지를 목도한다. 고생하다 결국 떠나는 아기를 자주 본다. 22-23 주 아기를 기도삽관으로 살린 의료진을 탓하기도 한다. 하나 부모가 원하면 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살리는 쪽을 택하는 걸 크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기도삽관만으로 생명이 연장되면 (그것도 모자라 흉부 압박을 하고 탯줄에 관을 넣어 투약하고 수액 그리고 혈액을 넣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우선 살려놓고 경과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부모와 이런 대화는 어렵다.


신생아중환자실 의사 과반수 이상이 만약 자신한테 그런 일이 생긴다면 편하게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나면 반대의 선택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의 아이들은 40주를 꼬박 채우고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도분만으로 낳아야 했다. 건강한 아기를 낳아서 다행이다. 미숙아를 낳는다면? 곧 미숙아를 낳을 산모와 아기 아빠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했던 그 선택지들을 내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 후 다시 환자를 볼 낯도 없지만 무엇보다 의사로서 권고하는 내 자신을 참아 낼 자신도 없다.


대다수의 22-23 주 미숙아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니면 몇 주 안에 우리를 떠나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엄청 아프게 고생하다 결국은 떠나는 아기들들, 또 슬퍼하는 부모를 보면 가슴이 아리다. 같은 부모로서 그 아픔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부모의 마음이 너무나 공감되어 아이들이 아프다거나 사라진다거나 하는 드라마 영화 책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며칠 전에 당직을 서는 24 시간 동안의 일이다. 23 주 된 쌍둥이 첫째가 아침에 자연분만으로 떠났다. 둘째는 아직 나오지 않아 경과를 보고 있었다.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아 둘째는 제왕절개로 낳기로 결정했다. 방금 아이를 잃고 그 아이를 아직도 안고 있는 부모에게 두 번째 아이를 편안하게 보내주는 게 낫다고 권고해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결국 기도삽관만 하기로 하고 상담을 마쳤다. 다행히도 아니 어쩌면 불행히도  아기는 기도삽관만으로도 잘 치료가 되었다. 물론 앞으로의 앞날이 그리 밝진 않지만 아주 간혹 있는 몸과 뇌가 건강한 아이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바쁜 하루가 가고 곧 퇴근하려고 하는 데 이번에는 22 주 미숙아가 출산 예정이었다. 산모가 모든 가능한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설득하려고 했지만 결국 기도삽관은 꼭 해달라는 엄마에 부탁에 500 g 아기를 또 살려냈다.


24시간의 당직 중 22-23 주 아기를 둘이나 볼 확률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 두 아기가 둘 다 살아서 중환자 실을 나갈 확률도 거의 없다.

가끔은 아가를 살리고 못 살리는 것이 나의 선택 아니 부모의 선택으로 만들어 버린 현대의학이 원망스럽다.


다른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과는 달리 나는 초미숙아들을 돌보는 것을 좋아한다. 또 무엇보다 아기들의 밝은 미래를 소망한다. 언젠가는 이 원망스러운 현대의학이 더 발전되어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부모들이 그리고 의료진들이 기쁘게 아기들을 살리는 날을 고대해 본다. 그렇게 살린 아기들이 다 건강하게 퇴원하는 미래가 기대된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