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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May 21. 2023

집에서 태어난 아기

인신매매와 약물중독

해리 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가 머리를 깎아 소방관이 되면 저런 모습일까. 짙은 밤갈색의 곱슬머리는 천장에 닿을 듯했다. 얼굴의 반 이상이 구불거리는 갈색 수염으로 가려져있었다. 하얀 반팔 셔츠와 헐렁한 소방관 멜빵바지가 꽤나 잘 어울리는 응급 의료요원의 모습을 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는 두툼한 손에는 희멀건 아기 싸개가 들려있었다. 

‘저 큰 몸으로 이런 섬세한 핸들링이 가능한 걸까?’ 

멍하니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다 번뜩 깨달았다

‘어머나 세상에, 저 아기가 내 환자구나!!’

이른 새벽 깊은 잠에 빠진 나에게 날아든 문자에는 ‘집에서 낳은 아기, 분만실 8’이라고만 적혀있었다. 때를 놓쳐 집에서 낳은 만삭아겠거니 하고 어기적어기적 걸어온 나를 마주한 건 해그리드 소방관과 그 큰 품 안에 안겨있는 1킬로가 채 안 되는 초미숙아였다. 서둘러 아기를 방사보온기에 안착시키고 생체 징후를 확인했다. 얼핏 봐서는 죽은 아기 같았다. 다행히 심장이 잘 뛰고 있었지만, 호흡이 약했다. 곧바로 아기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숨을 불어넣었다. 일 이 분쯤 지나자 다른 의료진도 도착했다. 곧 아기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이제야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산모를 바라보았다. 10대 후반쯤 되었을까. 창백하기까지 한 새하얀 얼굴에 회갈색 눈동자, 그 위로 긴 갈색 머리가 마구 헝클어 있었다. 방금 응급실에서 올라와 코로나 테스트도 거치지 않고 마스크도 끼고 있지 않았다. 감염이 염려되어, 바로 옆에서 문진 하기가 꺼려졌다. 보통 때 라면 산모와 가족에게 마스크를 껴달라고 요청한다. 분만 중이나 바로 직후에는 그런 요청을 하기가 망설여진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무리한 요청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산모님, 아기는 안정적입니다. 호흡만 도와주고 있어요. 곧 신생아 중환자실로 갈 거예요. 어떻게 낳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 까요?”

창백한 얼굴에 살짝 핏기가 돌았다. 아마도 아기가 괜찮다고 하자 안심이 된 것이리라. 

“아, 정말 다행이에요. 아기를 볼 수 있을 까요?

“물론이죠.”

코에는 마스크가 머리에는 모자가 씌여있어 아기의 얼굴은 반절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의 얼굴은 핑크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임신했는지 몰랐다고 했다. 새벽에 약에 취해 누워있다 갑자기 아기가 나왔다고 답했다. 집에 있는 여자가 911을 불렀다고 했다. 

나와 함께 생과 사를 가로지르는 응급상황을 자주 겪은 산부인과 의사, 줄리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애달픈 웃음 같은 것을 입꼬리에서 흘리며 말했다.

“같이 당직 서면 별일이 다 생기는 것 같아요. 참, 아기 엄마가 두어 가지 약물을 하고 있었대요. 소변 약물 검사가 진행 중이에요.”

줄리앤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간단한 정보도 흘려주고는 텅텅 빈 산부인과 복도로 사라졌다. 자다 나온 그녀의 금발 머리도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아기가 워낙 작아 한 시간 안에 모든 시술과 수액, 약물 투약을 마쳐야 했다. 서둘러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다. 


캘리포니아의 붉은 해는 탁한 스모그를 뚫고 무심히 떠올랐다. 인계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시원한 샤워 줄기를 맞으며 병원에서 묻은 무시무시한 병원균을 씻어내고 있었다. 문득 뇌가 물줄기를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아! 아기 탯줄을 뭘로 잘랐는지 물어보지 못했네!’

더러운 가위로 탯줄을 자르면 아기에게 파상풍의 위험이 있기에 늘 확인한다. 갑자기 새벽에 들이닥친데다 워낙 작은 미숙아라 서둘러 중환자실로 가야 했다. 서둘러 나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산모님, 좀 어떠신가요? 아까 분만실에서 만난 닥터 황입니다. 아기는 지금 안정적인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어요. 곧 담당의가 회진을 돌고 전화드릴 겁니다. 아기 탯줄 자른 사람이 누군지, 어떤 가위인지 확인을 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911 대원이 가지고 온 가위로 직접 잘랐어요. 아기는 괜찮은 거죠?”

“네, 꽤 괜찮은 상태예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담당의가 바로 전화드릴 겁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언제든지 전화 주셔도 되고 중환자실 방문도 가능합니다.”

짧은 대화로도 아기를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이 내게 닿았다. 엄마가 임신 중 약물 중독이었으니, 아기는 퇴원하면 엄마에게 갈 수 없다. 약물 중독을 이겨내고 언젠가는 아기를 데려갈 수 있으려나. 약간의 염려도 쏴아악 샤워 물줄기로 다 씻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엄마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은 그녀가 어느 큰 인신매매 조직의 피해자라고 했다. 몸에 새겨진 문신은 인신매매 조직의 표식과 일치했다. 그 조직은 피해자를 억지로 약물에 중독시켜 마음도 묶어 둔다고 했다. ‘집에 있던 여자’는 인신매매의 무리, 감시자였던 것이다. 약물 중독자란 편견에, 그저 약물을 함께 하던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자세히 묻지 않았던 내가 한없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나는 10대 여자아이가 아기를 낳았을 때, ‘집에 있던 여자’가 왜 엄마가 아니었는지,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어디에 있었는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 아기 아빠는 누구인지,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지 물어봤더라면, 그녀는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했을까? 산부인과 의료진은 관심을 기울였을까? 아니면 임신 중 약에 중독된 철없는 10대 여자아이로 치부하며 커다란 막을 둘러 그 안에 불쌍한 그녀를 가두었을까? 

유난히 핼쑥했던 얼굴이 잠시나마 옅은 분홍빛을 띠던 그 순간이, 눈동자에서 잠시나마 솟았던 희망이 떠올랐다. 전화기를 넘어 전달되던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그녀의 어린 목소리가 자꾸만 맴돌아 텅 빈 병상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를 만든, 그 어린 십대 엄마의 엄마를 찾아 주지 못한, 그저 그런 무책임한 어른 중 한 명이 되고 말았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36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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