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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Aug 23. 2020

기다림에 대한 생각

 1.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다시 읽다가,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이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하찮은, 무한히 고백하기조차도 어려운 금지 조항들로 짜여있다. 나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가거나 전화를 걸 수도 (통화중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화를 해오면 괴로워하고 (동일한 이유로) 외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그 자비로운 부름을, 어머니의 귀가를 놓칠까봐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기다림 편에서 볼 때 이런 모든 여흥에서의 초대는 시간의 낭비요, 고뇌의 불순물이다. 왜냐하면 순수한 상태에서의 기다림의 고뇌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전화가 손에 닿는 의자에 앉아 있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p.66


  나는 누군가를 매일 기다리게 했다. 언제 오냐고 매일 물어오는 가족들과 매일매일 얼음 땡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략 몇시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기다리라는 주문 '얼음'을 외쳤다. 집에 도착하여 간신히  '땡'이라고 외치고나서야 그들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에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나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서 더이상 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약속을 하지 않는 그에게서 더이상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공감되었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대수롭지 않은 늦어짐을 반복할 때 마다 내 죄책감을 커져만 갔다. 그래서 출근만큼이나 퇴근하는 발걸음이 더 빨라지는지도 모른다. 


  

2. 기다림에는 생각과 마음, 행동이 함께 한다. 집중하게 된다. 나는 내일을 기다린다. 언제까지 왜 기다려하는지 모로는 시간은 그 자체로 고통이지만, 내가 행동함으로써 그 기다림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정말 내가 원하는 그 날이 오긴 할까하는 의구심을 내려놓으면 이 기다림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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