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기 위해 준비할 것들 - 3
1인 기업가나 프리랜서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셀프 브랜딩이 중요하다.
그런데 셀프 브랜딩이 뭐냐고 물어보면 누구 하나 속시원히 대답해 주지 못한다. 책을 찾아봐도 뭔가 철학적이고 오묘한 이야기들만 나온다. 1인 기업가, 특히 디자이너에게 셀프 브랜딩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셀프 브랜딩이라는 놈을 이렇게 정의해보려고 한다.
내 디자인이 시장에 팔리게 하기 위한 모든 것
누누이 말하지만 디자이너는 장사꾼이다. 내 디자인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고객을 모셔와야 하는데, 고객이 나의 디자인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고, 선택하고, 구매하게 되는 모든 과정들에 디자이너의 샐프 브랜딩이 관여한다.
그럼 나의 디자인을 알리기 위해 어떤 작업들을 해야 할까?
사람이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있다. 명함 주고받기. 이 명함은 계륵 같은 존재라, 받아놓으면 정리도 해야 하고, 잘 정리가 안되어 있으면 찾기도 불편하다. 오죽하면 명함을 정리해주는 앱이 나와있을까? 그런데 명함이 없으면 또 뭔가 전문가가 아닌 것 같고, 대화도 잘 진행이 안될 것 같고, 그렇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일하려면 일단 명함은 필수다.
명함은 대부분 5cm x 9cm 규격으로 제작한다. 명함 인쇄업체마다 조금씩 다른 사이즈도 규격 사이즈로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이즈가 5x9사이즈다. 이 손바닥보다 작은 공간 안에 나를, 나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놔야 한다. 독립한 디자이너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의외로 명함 디자인에 스트레스를 받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나도 첫 명함을 만들 때 정말 부담스러웠다. 회사 이름도 만들고, 로고도 만들었는데, 명함은 좀 유니크했으면 좋겠고, 받는 순간 '아 디자이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해야겠는데... 이게 맘처럼 쉽지 않다.
명함은 가이드라인이 따로 없다. 그냥 내 맘대로 만들면 되고, 담고 싶은 정보만 담으면 된다. 디자이너의 명함이라고 해서 디자인적으로 특별했으면 좋겠지만, 자칫하다간 너무 과한 디자인을 담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명함은 심플하고 담백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러스트가 강점인 디자이너라면 자신의 이미지를 일러스트로 그려 넣어 포인트를 주고, 광고디자이너라면 멋진 카피를 한 줄 넣어도 좋을 것 같다. 내 명함은 카피라이터 정철 선생님의 책 '카피 책'을 읽다가 정철 선생님의 명함을 보고 영감을 받아 즉석 해서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나는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며 사업자를 몇 번 바꾸는 통에 회사 이름이 자주 바뀌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주는 고객들은 내 회사 이름보다는 '최실장', '최실장 님'이라고 불러준다. 그래서 내 회사 이름으로 브랜딩을 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을 브랜딩 하는 게 오히려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명함에 '최인호입니다'라고 적었다. 내 명함을 받은 고객들에게 내 회사 이름이 뭐다라고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나는 1인 기업가이고, 나 자체가 회사이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으로 브랜딩을 할 것인지,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딩을 할 것인지는 디자이너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이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저 그런 평범한 회사보다는 '유명한 개인'이 영업하기 유리하다는 것을.
셀프 브랜딩을 다루는 책이나 아티클에서 거의 필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정보가 온라인에 있는 시대니까. 디자이너 자신의 포트폴리오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면 물론 좋다.
그런데, 나는 홈페이지가 없다. 홈페이지 없이 영업한 지 7년째다. 회사 이름으로 된 도메인도 사업자 등록 후 3년 만에 우연히 구입했다.(그전까지는 다른 쇼핑몰이 사용하던 건데, 계약이 종료돼서 떠있는걸 우연히 발견해 구매했다) 도메인만 내가 가끔 포트폴리오를 올려놓는 블로그에 연결해놓았다. 홈페이지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하지만, 홈페이지 없이도 일을 잘 하고 있다. 모든 고객들이 온라인에만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 페이스북 친구 600명(밖에 안되지만) 중에 고객은 2명남짓이다.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페이지도 중요하지만 나는 회사소개서를 반드시 만들어두라고 하고 싶다.
고객과 컨택하다 보면 고객이 불시에 회사소개서를 요구할 때가 있는데, 이때 미리 만들어두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출력물을 원하는 고객에게 '홈페이지 가서 보세요'라고 할 만큼 내 홈페이지와 포트폴리오가 자신 있다면 패스.
홈페이지를 먼저 만들었다면 홈페이지를 준비하며 만들어둔 내용과 디자인을 토대로 소개서를 만들어도 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먼저 회사소개서를 권한다. 회사소개서는 내가 하는 디자인이 어떤 것이며 어떤 일을 해왔고, 누구랑 일해봤는지에 대해 만들면 된다.
대략 10페이지 전후로 만들면 되는데, 회사소개서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 내가 디자인하는 분야와 비슷한 분야의 디자인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공개되어있는 회사소개서를 다운로드하여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알아보고, 대략적인 구성을 잡아보자. 회사소개서의 디자인도 명함과 마찬가지로 심플하게 하면 좋은데, 명함과 컬러나 디자인 톤을 맞추는 것이 좋다. 회사소개서와 명함은 거의 세트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회사소개서를 다 만들었다면 PDF 파일로 만들어 온라인 배포해도 되고, 출력해서 책자 형태로 만들어도 된다. 규격은 A4 사이즈를 맞추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제본을 해둔 소개서가 다 떨어졌을 때 바로바로 인쇄해서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 요즘은 10권 이하의 소량도 책으로 만들어주는 인쇄소들이 많으니 몇 권 정도는 좋은 종이를 써서 책자로 만들어두자. 파일로만 보여주는 소개서와 책자로 만들어져 있는 소개서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준비할 것이 아주 많다. 회사 이름 정하고, 로고 만들고, 소개서까지 만들었는데 이제는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관리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부담을 갖지는 말자. 온라인은 선택이다. 내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고 온라인과 sns 채널을 구축하자.
1인 디자인 기업을 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 중에 소셜미디어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실제 소셜로만 영업하고 수주받아 일을 한다. 디자이너 각자의 영업방식일 뿐이지 누구나 온라인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한 후 딱 1년간 네이버에 온라인 광고를 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네이버에 등록한 후 키워드 광고를 했다. 키워드 광고는 클릭당 얼마씩의 과금체계가 있는데, 당시 광고료로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사용한 것 같다. 그렇게 딱 1년간 키워드 광고를 한 후에는 따로 광고를 하지 않아도 기존 고객들의 재의뢰와 소개를 통해 일이 꾸준히 이어졌다. 6년 차 정도 되었을 때는 홈페이지마저 닫았다. 그냥 내가 운영하던 블로그에 포트폴리오만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요즘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아주 매력적인 소셜미디어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검색해서 찾을 수 있고, 연결고리를 만들어 친구로 등록할 수 있다. 나는 고객들이 대부분 오프라인에 있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 편인데, 몇 가지의 가능성을 보게 된 일화가 있다.
내가 취미로 캘리그래피를 공부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을 내가 캘리그래피를 공부하며 만들어낸 작업물을 올리는 저장소로 사용했다. 나는 주로 영문 캘리그래피를 썼는데, 국내에서의 영문 캘리그래피는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팔로워의 대부분이 외국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캘리그래피 아티스트도 있었고, 브랜딩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다이렉트 메시지라는 쪽지 기능이 있는데, 그 다이렉트 메시지로 외국에서 캘리그래피를 이용해 BI 디자인을 해달라는 요청이 몇 번 왔었다. 취미로 공부하는 것이어서 다 고사하긴 했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도 영업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실제로 나도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페이스북 친구에게 일러스트 외주를 요청한 적도 있었으니, 소셜미디어에 내 작업물을 꾸준히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브랜딩 성과는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셀프 브랜딩에 관한 책이나 아티클을 보면 마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은 단지 미디어일 뿐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고, 내 디자인이다. 내 디자인이 멋지지 않은데 미디어에 노출시켜봤자 헛수고라는 것이다.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자이너 자신의 디자인이 브랜딩의 시작이자 끝이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규모가 크고 디자이너로써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만한 일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메이드 되지 않는다. 당신이 기업의 오너라면 회사의 명운이 달린 프로젝트를 페친이라는 가벼운 인연으로 만난 프리랜서 디자이너에게 맡기겠는가? 먼저 내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디자이너에게 포트폴리오는 디자이너 자신이다. 포트폴리오 없이 디자이너 얼굴만 보고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이것도 No. 그런데, 포트폴리오도 정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만든 디자인이 너무 소중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때와 장소, 요구하는 고객에 따라 포트폴리오는 정리되어야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참 갑갑할 때가 있다. 나는 아주 열과 성을 다해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고객의 취향이 너무 이상한 데다, 너무 완고해서 어쩔 수 없이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할 때. 이럴 때 가끔 다른 사람 보여주기 부끄러운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수가 있는데, 이런 포트폴리오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다.
사진 스튜디오의 홈페이지에도 모든 고객들의 사진을 다 올리지 않는 것처럼, 대중적인 눈으로 봤을 때 훌륭한 포트폴리오들만 공개하자. 이건 클라이언트의 규모와 관계없다. 전적으로 작업물의 퀄리티로만 판단해야 한다. 혹시라도 부끄러운 포트폴리오를 공개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작업했던 시안들을 함께 공개하는 방법으로 상쇄하자.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야 할 때도 있는데, 주로 회사소개서를 요구할 때 정리해서 보내는 편이다. 예를 들어 S그룹 계열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요청했는데 경쟁사인 L그룹 계열사 포트폴리오만 잔뜩 보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담당자는 그냥 넘어갈지 몰라도 결정권자에게 올라가면 열에 아홉은 아웃이다. 내 디자인 실력은 충분한데 내 과거 전력 때문에 아웃당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필드에서 왕왕 벌어지는 일이다.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은 이외에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나의 디자인을 알리고 시장에서 선택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시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니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해가며 나 자신을 브랜딩해 나간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디자이너로 일할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강조하자면 브랜딩의 본질은 내 디자인의 질(퀄리티) 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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