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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Apr 07. 2024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면...

토요일 아침, 어제 지방을 다녀와 잠에서 깨었지만, 일어나지 않고 뭉개고 있었는데.. 아내와 딸이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딸이 밤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딸은 저에게 자신이 영적인 꿈을 꾸었다는데, 기본적인 구성은 사탄마귀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해를 끼치려 했지만, 잘 안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죄라는 영역을 통하여 꼼짝없이 참수를 당하여 손과 발 몸통이 잘려 벽에 걸어진 것들을 꿈으로 본 모양입니다. 저는 속으로 말세에 성령을 통하여 자녀는 예언하고, 나이든 자들은 꿈을 꾸며.. 청년들은 환상을 본다고 하였는데, 저의 딸은 청년에 속하는데.. 환상을 주시지.. 꿈을 주시나? 하며 웃었습니다. 사실 저도 꿈으로 주님을 뵙거나 영적인 꿈을 자주 꾸지만, 주위에 이야기해 볼 사람도 없거니와 글로 나누기도 애매하여 자제하는 편으로 딸에게 몇 일 전 꾼 꿈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라기보다는 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인질로 잡고 있는 상태에서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을 들고 그 인질의 목을 가르려해 제가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목으로부터 얼굴 전체를 가르고 얼굴 피부를 벗겨내었지만, 목숨은 부지하여 몸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놀라 깨어, 멍하니 있게 되었는데.. 마지막 때이므로 자신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으므로 그동안 잘 데리고 놀았던 자들의 영적인 얼굴 피부를 벗겨버리므로 이도저도 못하게 구속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구한말에도 형벌을 주며 죽이지는 않지만, 뜻밖에 시체처럼 살아가게 하는 “팽형”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형을 집행한다기보다 대중이 널리 보는 가운데서 베풀어지는 면박의 한 요식 같은 인상을 지니며 집행되지만, 이 팽형을 받은 사람은 비록 생명은 유지 되었을망정 마치 사형당한 사람처럼 여생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합니다. 죄인을 뜨거운 물에 삶기 위해 가마솥의 나무뚜껑 위에 묶인 채 앉히지만, 판결 선고가 끝나면 그것으로 형이 끝난 것으로 간주되나 때로는 그 가마솥에 미지근한 물을 담가 그 속에다 죄인을 처박거나, 빈 솥에 죄인을 몰아넣고 솥뚜껑을 닫은 다음 아궁이에 불을 때는 시늉만 하고 그치는 경우로 집행한다고 합니다. 팽형의 행형이 끝나면 물에 젖은 죄인은 가마솥에서 끌어내서 죄인의 가족에게 인도되며, 인도될 때 이 죄인이 산사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고, 마치 뜨거운 물에 삶아진 시체처럼 행세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받은 가족들도 호곡을 하며 마치 죽은 가장을 대하듯이 슬퍼해야 하고 또 상례에 준하여 인도받아야 하고, 살아 있는 시체를 집으로 운반할 때도 대성통곡을 하며 뒤따라가야 한답니다. 더불어 일단 집에 옮겨오면 그 살아있는 시체의 신분이나 지체에 알맞은 응분의 상례를 마치 죽은 사람과 똑같은 절차대로 치러야 히고, 이 상례가 끝나면 이 독직죄인은 공민권을 박탈당하여 공식적으로는 그의 친지나 친척과도 만나서는 안 되게끔 되어 오로지 집안에 갇혀 가족하고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팽형은 세상과는 등지어야 하며, 살아도 산 게 아닌 삶을 살아야하는 입장의 창살 없는 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지만, 주위의 눈을 의식하여 차라리 죽은 것이 더 나다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영적 전쟁이 심화되고 있는 작금의 시대적 상황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충분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여 지며, 교회에 댕긴다고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뭔~ 겁주는 (개)소리여~~ 하실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때를 이루기 위한 은혜가 충만함과 그에 반목하는 자들의 표호가 극에 달함에 따르는 못할 짓이 없을 것이라는 대목에서 믿는 자 모두는 더욱 더 무릎 굻어 주님 곁으로 바짝 다가가야만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있어 치열함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피해가 존재함은 매우 당연한 것으로 우리교회 좋은 교회이므로 절대 그리할 수 없다하시는 분은 말씀의 말미에 있는 “요한의 묵시록”을 짬을 내 몇 번 더 읽으시고, 주님께 해석해달라고 하셔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라 함은 선과 악의 그 경계가 무너진 어둠의 심연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적 상황이지 너 좋고 나 좋은 관계는 절대 아닐 것으로 영적인 전쟁도 보이지 않아 그러하지 더 처절하면 처절하지 그냥 그대로는 절대 아닐 것입니다. 물건 몇 개 더 팔고, 있는 그 곳에서의 좋은 평판은 어떻게 변질될지도 모를 상황으로 언제 어떻게 치달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답은 믿는 자들의 대적들이 어떻게 하는냐? 에 따라 한순간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무슨 저에게 이익이 있으며, 그러한다 한들 그 자체에 신경 쓰는 자들이 있겠소만, 예언의 성취에 따르는 원한을 품는 해코지는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측면의 경각심을 제공할 따름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 세계의 전쟁과 함께 무저갱 속에서는 사망의 군대들과 여러 짐승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오며, 온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을 것입니다.      


멸망의 영이 악인의 땅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하늘과 땅의 일과 영과 육의 일이 오묘하게 맞물려 돌아감으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며 깨어 있어야 할 것으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충돌은 공중의 남은 베일이 벗겨짐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큰 언약의 강력한 빛과 활동 속에 드러나게 될 것으로 그 소식을 천사들이 세계만방에 선포하여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실제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중 차원 속에 빛의 군대와 여러 분깃의 영들과 그리스도의 흔적을 소유하며 그 안에서 장성한 자들로 영적 전쟁을 치루나, 영적 전투에서 이김으로 돌아오는 영혼에게도 찢긴 상처가 온 몸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밟혀서 형체조자 분별키 힘든 영혼들이지만, 주님께서는 어루만져 치유해주시고 고통의 상처를 싸매주시며 상급으로 갚아주시므로 영혼들의 기쁨은 배가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목숨 바쳐 이를 말린 자들이 아무도 없었거니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는 이보다 얼마나 부인하며 배신하는 자들이 많을 것을 아셨기에 숨겨놓은 자들로 비밀리에 마지막 때를 마무리 하실 것입니다.     

 

인간들이 나약함으로 접근하는 악한 영이 틈타지 못하게 할 길은 오직 흠/점/티 없는 거듭을 이루어야 할 것으로 악한 영에게 자신이 흔들리면 이미 그 때는 영이 떠나가는 것은 일순간이므로 예리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믿음 속의 믿음과 행함의 일치뿐이 아닌 드러난 믿음과 드러나지 아니한 믿음 사이에서도 믿음과 행함의 일치가 보다 더 수준 높은 믿음과 행함의 한 권세로 이루어져 드러날 수 있어야 사탄마귀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더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 믿음을 이룸이 있어야 할 것으로 가진 믿음을 더 지혜롭게 들어 쓰므로 영안에서 지혜의 장성함을 이루어 내야한다는 것으로 영의 언약과 가장 핵심적인 권세의 분깃으로까지 귀한 믿음의 장성과 변화를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진정 예수를 위해서라면, 어떤 영적 활동과 초월된 영의 차원 속에 성령과 하나를 이루어 호흡해낼 생각을 지녀 주님을 향한 뚜렷하고도 심히 사랑스러운 중심 형상이 표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직분 있어 감당하고, 교회 생활로 서로 연락하고 처리하며 기도함을 철저히 넘어서는.. 이제는 TV드라마 아예 끊어버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무릎 꿇어 주님과 대면하며 자신과 가족에게 은혜주시기를 간곡히 애원하여야 할 때입니다. 사실 살아 있음에 무시로 기도하며 호흡하고, 자는 순간까지 손보아 주심에 감사 감사드리고, 자신이 이루어야 할 사명을 교회 중심에서가 아니라.. 영의 중심에서 알게 해달라고 눈물을 쑥 잡아 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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