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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Apr 15. 2024

믿음의 중심, 제대로 갖추어야...

주님과 수많은 시간속의 동행과 성령의 이끄심을 통한 30여년에 걸친 믿음의 여정에 관한 궤적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현재 섬기는 교회에 온지도 10년차로 10년 주기로 어디에 쓰시려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 성도와는 전혀 다른 믿음의 방향성(Road Mapping)을 통하여 다양한 경험 기반의 신앙여정(Journey of Faith)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면 관계상 구구절절이 밝히지는 못하지만, 첫 번째의 10여년은 주님과의 터치 포인트(Touch Point)로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하심을 위한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상태를 직접 만나거나 보게 하심의 접점을 허락해 주시는 시간으로 진정한 믿음의 근본의 예를 제시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10여년은 삶과 믿음이 영적인 영역과 실제적 삶에 있어서의 관계성에 대한 시간이 지나므로 장성한 분량까지 영적 성장을 이루어내야 함을 통하여 믿음의 중심 잡아내기는 각각의 변수(가족, 교회, 직장, 세상의 변화 등등)들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한 자기대면을 이루어내도록 인도 하셨습니다. 현재까지의 세 번째 10년은 그 모든 것들을 주신 말씀으로 정리케 하시며, 폭과 넓이와 깊이 값을 지니도록 하셨습니다.

 

세 번째 십년차를 이루는 작금의 시간 속에는 새로운 믿음의 영역으로나 깊은 영의 단계로의 스케일업(Scale-up)을 이루지 않겠는가? 라는 기대를 양 것 지니며 기대에 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더불어 아내에게도 큰 은혜 주심의 열매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오늘 예배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아내가 교회 대표기도를 순번에 의해 진행하며 전해져 오는 그 느낌 자체는 너무나 식상한 익숙한 기도문 형태가 아닌, 뭔가? 농익고 무르익어 나는 향기와 더불어 숙성됨의 정형을 지니므로 저 자신 놀라며 주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주님께서 항시 사람을 쓰시거나, 주변의 환경으로 다루어 가심에 있어, 그 또한 감사에 감사를 드려야하는 부분은 딸의 신앙이 일취월장하며 주님의 손길을 더듬어 찾아가려는 애절함과 바둥거림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 또한 은혜로 감사 안 드릴 부분이 없음에 그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선거일 아들 가족과 함께 온 식구가 모였는데, 그 때 딸과 진지하게 나누었던 “기도” 이야기를 통하여 아내와 딸이 신앙의 연조에 맞게 다루어 가심을 절대적으로 느끼며, 저희 가족을 향하신 믿음의 열매들이 하나하나 도드라져 나타남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딸과의 대화에서 나누었던 내용으로 믿는 자들이 기도를 대하는 입장의 미숙함을 제시했었는데, 기도는 해야 되고 주위를 살펴 고루고루 버물어내면 잘한다하는 것과 더불어 무조건적/절차적/형식적으로 “기도 하겠다”라고 하는 행태는 영적 무식의 쌍벽을 이룸을 금치 못함과 같다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합당한 기도를 이루고, 덤으로 자신의 것들을 주워 챙겨야함에도 자신이 무신 천사장이나 된 듯 그 속성도 모르고 해결점만을 간구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이루시려 그 뜻으로 제시한 문제를 자신이 뭐라~ 끼어들어 콩나라 팥나라 함이 되므로 절대 아니 됨으로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기도를 숙성시켜 사안을 보지 말고 하나님과 기도 수혜자와의 관계를 먼저 아뢰고, 믿음의 환경을 생각하여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기도해 주어야함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부분들을 다 까먹고 멍텅구리처럼 행동함은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에서 능력주시는 자와의 진정한 기도의 통로를 이루었는가? 라는 부분으로 자신은 직분으로 책임감과 사랑으로 기도 하겠지만, 하늘을 향한 기도의 통로를 제대로 뚫어놓지 못한 상태로는 직분 때문에 거룩한 노동을 이룸에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참으로 안타까움은 인내로 이룬 기도의 양과 금대접에 눈물로 올린 기도의 양이 차야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기도해야하고 듣던지 말든지 전해야 한다는데.. 물론 말씀에 있는 것들이 틀렸다는 것이 절대 아니고, 자신을 돌아보아.. 주위를 살피며 기도를 하든지 양육을 하든지 해야지.. 아무리 그물을 던진들 그물에 구멍이 숭숭나있는데.. 뭘 하겠다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일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기도가 상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을 각자의 경험으로 나누고, 실천함에 있어 기도를 방해하는 요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믿음의 공동체라는 표현은 그럴싸한데.. 무슨 능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면 성경공부를 더 하는 것이 전도하는 것보다 더 상급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을 이루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삼천층에 멀리 계셔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다라는 조건을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영의 세계에는 절대적 거리가 없음으로 제대로 된 관계와 입장이라면, 모든 능력의 역사로 그 모든 것이 기도자(자신)를 통하여 나타내게 하실 것으로 영의 영역을 좀 알고 기도를 하든지 손을 머리에 얹어 안수해야 할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영 안에서의 생각은 순간 속도로 이동하므로 생각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자신의 기도가 상달되지 않음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심은 그냥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서라도 자기 자신부터 잘 다듬어 자신의 인식과 자세 태도 및 능력을 갖추고 기도해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의 초자연적인 영역을 살아가며 자신이 능력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할 것으로 이것저것 들은 것은 있어 나대다가는 자신의 빈 영역으로 인해 올무에 걸려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를 이룰 것으로 믿는다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도 거는 입장을 취하여야함을 다시 각성해내야 할 것입니다. 대충대충 믿어버리면 자신의 안에서 역사하시려는 성령님의 능력과 척도를 제한함을 넘어 성령을 거역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음을 생각이나 할 수 있다면, 절대 동네 시아버지 열둘과 같은 행동은 침잠하여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가 성령님과 변론하며 잘못된 것들을 솎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누가 해주는 우리 교회나 담임목사님이 해주는 것이 아닌, 자신이 골방에 들어가 무릎 꿇어 낙타무릎이 되도록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온전함을 넘어 충만함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열매를 보아 안다고들 하는데, 저는 주님과의 약속으로 지킨 믿음의 역정을 돌이켜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을 부여하시기 위한 것들을 아내와 딸을 통하여 증거삼음으로 그저 새로운 터닝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게 됩니다. 오래 믿음보다는 때가 때이므로 늦된 자가 빨리 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오래 믿어 맹탕이 되었다면 첨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머리를 좀 써서 간을 맞추어야지 우리 교회는 이게 정설이야~ 해버리면 정말 대책 없음에 정신 차려야 할 것입니다. 잘나서 썰을 푸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자세를 지니며 10여년 차로 색다른 정말로 일반 성도들과 목사도 갈 수 없는 난공불락으로 인도하셨던 성령님을 쫓아 울며불며 징징대며 달렸던 자로써 천하보다 귀하신 분들 모두가 주님께서 잘 하였다 하시는 칭찬 들으시라고 짖어볼 뿐입니다. 오래 믿은 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절대적인 영의 무식이 충만해 보임은 영의 자유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영 안에는 자유가 있으며, 일반적인 경직성과 피동성을 넘어서는 다름 차원의 자유함을 느끼지 못하므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마서, 하나님께서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하시므로 은사와 그 기능의 명확성을 가지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향력과 능력을 가져오려면 영 안에서 자유로워지고, 항시 깨어 감사와 찬양과 기도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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