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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의 법칙으로 영적 집중을 이루는 이기는자의 길

by 잡학거사

영적 전쟁의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삶속에 날이면 날마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θ의 사람들은 그 전장의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믿는 자들이 이 전쟁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시선은 θ 나라보다 "세상적 삶"에 더 깊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 삶은 단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세상이 기준이 되고 세상이 목표가 되고 세상이 마음을 이끄는 상태를 말한다. 이 삶의 속성은 믿는 자에게 매우 익숙해 보이지만, 사실상 그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묵묵히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세상적 삶은 죄처럼 보이지 않기에 방심하기 쉽고, 신앙처럼 보이는 옷을 입기도 하여 분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세상적 삶은 영적 집중을 흩는 가장 강력한 전략적 함정이며, 이 삶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영적 매스의 법칙을 이해하려면 먼저 세상적 삶의 속성과 그 요소를 직면해야 한다. 세상적 삶의 첫 번째 속성은 "분산" 이다.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나뉘고, 시선이 외부의 수많은 소리에 끌리며, 영혼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흔들린다. 사람들은 이것을 "바쁜 삶",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삶",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적 노력"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영적 집중을 빼앗기게 하는 사탄의 핵심 전략이다.


이 분산은 죄가 아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만, θ 앞에서 힘을 모으지 못하게 하고, 말씀 앞에 마음을 고정하지 못하게 하며, 기도의 흐름을 끊고, 영적 민감성을 무디게 만든다. 결국 영혼은 얕아지고 넓어지지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해 작은 풍랑에도 쉽게 흔들린다. 많은 성도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큰 죄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분산’" 때문이다. 세상적 삶의 두 번째 속성은 "자기중심" 이다. θ께 시선을 두지 않고 자신에게 시선을 두는 상태, θ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된 상태이다. 이 삶은 신앙의 형태를 갖고 있을지라도 안쪽 중심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판단과 욕구와 결정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기도도 응답을 위한 도구가 되고, 예배도 감정의 만족이 되고, 말씀도 필요할 때만 찾는 조각난 지혜가 되어버린다. 이 상태는 사탄이 야호~를 외치는 가장 좋아하는 상태이며, 영적 전쟁에서는 가장 취약한 지점이 된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은 θ의 인도 대신 자아를 따라가게 하고, 결국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상적 삶의 세 번째 속성은 "감정 의존" 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감정이 영적 흐름을 어떻게 흔들어놓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감정이 흔들리는 곳에 사탄은 언제나 틈을 낸다. 감정에 끌리면 사실보다 느낌이 더 중요해지고, 진리보다 분위기가 더 강해지며, θ의 음성보다 내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이때 기도는 잘 들리지 않고, 말씀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예배는 감동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예배에 감동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중심이 되어 θ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감정 중심의 신앙은 영적 전쟁에서 결코 버틸 수 없다. 세상적 삶의 네 번째 속성은 "즉각적 만족" 이다. 빨리 얻고, 빨리 해결하고, 빨리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인내를 잃고, 깊이를 잃고, 기다림의 은혜를 잃는다. 이 마음은 영적 집중을 파괴하고, 영적 훈련을 약화시키며, 하나님이 이루시는 장기적 성숙의 과정을 무시하게 만든다. 결국 θ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사탄의 타이밍에 끌려가게 된다. 하늘의 영적 성숙의 방식은 언제나 깊고 천천히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세상적 삶은 언제나 즉각적이고 얕은 만족을 추구하지만, 둘은 양립되어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세상적 삶의 다섯 번째 속성은 θ 없는 성공이다. 교회에 다니고 신앙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목표와 기준은 세상의 성공 프레임에 갇혀 있는 상태이다. 이런 성공은 θ과 분리된 성공이며, 결국 영적 전쟁에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왜냐하면 θ 없는 성공은 θ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의지하게 만들며, "θ의 나라"보다 "내 인생의 나라"를 더 크게 여기는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θ과 함께 싸우는 군사가 아니라, 혼자 전쟁터에서 방황하는 병사로 만들며 결국 사탄의 공격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세상적 삶의 속성들은 믿는 자들이 너무 익숙하게 살아서 오히려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이다. 죄로 접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처럼 위장하고, 신앙의 언어를 덧씌우며, 영적 집중을 조금씩 흐트러뜨려 결국 θ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영적 매스, 즉 집중된 영적 전력을 형성하려면 이 세상적 삶의 속성을 직면하고 끊어내야 한다. 마음이 분산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힘이 생기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돌파가 일어나지 않으며, 기도를 많이 해도 실제 전장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θ은 이러한 속성을 드러내고 깨뜨리길 원하신다. θ께서 지금 내 삶에서 다루고 계시는 "결정적 지점"을 발견하고, 그곳에 말씀과 기도와 예배와 순종을 집중하면 영적 전선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아침의 짧은 기도 10분이 하루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고, 유혹의 순간에 30초의 기도가 죄의 패턴을 끊으며, 관계의 갈등 속에서 한 줄의 축복이 어둠의 흐름을 전복시킨다. 이러한 작은 집중이 모이면 영적 국지적 우세가 형성되고, θ은 그 순간을 사용하여 우리의 삶 전체를 회복시키신다. θ은 말씀, 기도, 예배, 순종을 통합하여 영적 전력을 한 지점에 모으기를 원하신다. 이 통합이 이루어질 때 영적 파괴력과 돌파가 나타난다. 반대로 마음이 나뉘고 시선이 분산되고 감정이 흔들리면 영적 전력은 약해지고, 세상적 삶의 속성이 다시 영혼을 잠식한다. 그래서 θ은 우리에게 "때"를 붙잡으라고 하신다.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고, 순종해야 할 때 순종하며, 예배해야 할 때 예배하고, 용서해야 할 때 용서하는 순간 θ은 집중된 영적 전력을 통해 전장을 바꾸신다. 이 때가 바로 영적 매스가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시간이다.


결국 믿는 자가 세상 속에서 흔들림 없이 이기는 자로 살기 위해서는 세상적 삶의 속성을 분별하고 그 유혹을 끊어내며, θ이 지정하신 곳에 영적 전력을 모아야 한다. 마음을 모으고, 말씀을 모으며, 예배를 모으며, 기도를 모으며, θ이 지금 다루시는 영역에 집중할 때 세상적 흐름은 약화되고 θ 임재의 흐름은 강해진다. 이 집중의 삶을 사는 자는 세상적 삶의 어둠 속에 잠기지 않고, 마지막 때에 θ의 군대로 세워지며, 흔들리지 않는 이기는 자로 서게 된다. θ께서는 각 개인들의 이 집중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승리를 이루어 가게 다듬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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