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빠른 사람을 약삭 바른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곧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읽어 내거나, 상황 판단이 빠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바둑에서 보더라도 장고 끝에 악수 난다고 하는데, 장고(長考)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궁리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감(感)에 의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소비하면서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 최선의 수순 등을 헤아려 마무리하기까지 깊이 몰입한다는 바둑 용어로 일상에서도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장고에 돌입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머리가 좋고, 열심히 살아가며, 깊이 생각하며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한 가지 생각이나 방향에 몰입하게 되면 전체적인 국면의 흐름을 망각하고 쉽게 아닌 것에 몰입되거나, 판단력이 무뎌지고 흐려짐에 따라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등의 상황에 봉착되어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 악수를 두는 행태는 너무나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치 빠름에 따라, 상황적 인지에 있어 촉감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잘 읽어낼 수 있어야함은 특히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다름이 없으므로 우리는 혼란의 극치를 이루는 현 시대적 상황에 몰입되지 않고 하늘의 뜻과 역동하심을 말씀을 기반으로 눈치 빠르게 대처해 나가는 행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다는 표현보다는 시대적 상황을 잘 읽어내며 자신의 자리와 입장을 잘 파악하는 것은 영원한 세계로 만물이 새롭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당도하기 위해 새 창조 역사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과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어떠하니? 저러하니 하는데 귀가 솔깃할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나는 어떠한 상황이며 그에 따라 진정 길을 잃은 사슴은 아닌가? 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없어서 영에 기갈이 드는 것이 아니고, 영양가 없는 꼴만 먹어 스스로 말라 비틀어져 갈비뼈가 나오고, 몰골이 송연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영의 거울에 비춰봐야 하는데, 괜찮다~ 몰라도 된다~ 저러면 안된다~ 함에 홀망해 있음을 진정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극렬히 보여주는 성경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초림하실 때의 상황과 다시 오실 재림의 상황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는 상황에서 눈치 빠르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 하셨을 때 메시야로 알아본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였습니다. 말구유에서 아기 예수로 탄생하셨을 때, 알아보고 나온 자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예루살렘 사람 시므온과 안나라는 여선지자 뿐이었습니다.
초림 당시에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긴다고 하는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율법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예언한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으나,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하여 할 대목으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알아본 몇 안 되는 그들의 대부분은 나이 많은 과부, 양을 치던 하층민 목자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비주류에 속하던 이들이었다는 점은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로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그들도 초림을 알아채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 12절에서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게 됩니다. 누가 예지하셨을까요? 성령의 인도 없이는 그 먼 길을 별자리에 의지하며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것은 현대의 입장에서 보드라도 강력한 이끄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그 먼 타국에서 아무런 확증도 없이 보이지도 않는 성령의 조명만 받고서 베들레헴이라 곳까지 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 일까요?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옛날 옛적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에 내비게이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먹을 것도 덮을 것도 변변치 않았을 터인데 하늘의 별만 쳐다보면서 끝까지 믿음으로 한발 한발을 내딛는 것 그 자체는 기적이며, 일반의 믿음으로는 절대 이루어낼 수 없는 일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의 순종을 우리는 배워야 하며, 그러시지 않을 지라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적 각성을 지녀야만 가능함을 인지하시고, 우리들 자신의 믿음은 어느 척도를 지니고 있는지 오늘 이 시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며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면, 죄송함을 아뢰며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무릎 꿇어 제대로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예루살렘 사람 시므온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2장 26-27절에 나오는데,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로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시므온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함을 지니며 섬기던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시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 곁에 가까이 가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라고 묻고 싶습니다. 신앙의 뿌리 깊음을 지녔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그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음에도 메시아의 오심을 알아본 사람들은 극소수였으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도 유사할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초림으로 우리들 곁으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나서야 많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알게 된 것처럼 재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극소수의 자들에게만 재림 예수께서 알려주고, 만천하가 알게 될 때는 주님을 쳐다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으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며 종교적 열심을 내며 교회생활을 하는 많은 자들은 재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무관심하거나 재림을 지식적으로 알고,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성령의 인도가 없으므로 구별된 첫 열매의 신부가 되지 못하며, 주여 주여 한들 사랑의 주체이신 주님께서라도 멀리까지 눈을 돌리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인도를 받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첫 열매로 들림 받아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제일 먼저 나아와 엎드려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계시록 7장에는 예수께서 공중강림하신 후 7년간의 환란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해 그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일이 일어난다 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 할 수 있는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해주신다고 라고는 하시지만, 그 상황 자체를 겪어낸다는 것은 죽음을 통한 순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시대의 편한 세상에서 잘 살다가 목에 칼이 들어오지만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가도 난리를 치는데, 무슨 순교일지? 정녕 걱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을 숨겨주다 잡힌 독일의 쌍둥이 처녀가 수용소에 갇혀 주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함과 같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과 동행함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정확히 적시되어 있듯이 7년 동안의 환란 기간이 다 끝나고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고 나서야 천하만국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하나님 나라(왕국)의 시대가 열리게 되어 뛰쳐나가 주님을 뵙고자 하지만, 어디에 계신지? 자신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음을 어제 중국 쓰촨성의 한 화학공장에서 화학가스가 유출되어 물과 접하면 염산이 되어 버림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피신가기 위해 온 도로가 마비되었던 것과 같은 아비규환의 그때는 주님 뵙기 정말로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 시간과 틈이 있을 때, 자신보다 더 잘 믿는 자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음을 빨리 깨닫고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령님께 깨닫게 해달라고 졸라야 할 것입니다. 자신은 종교생활 잘하고, 사랑의 하나님을 잘 믿고 있으므로, 무탈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이 휩쓸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모두가 함께 배도해 버리고 있음으로 인하여 두름으로 떠 넘어가게 됨을 잊지 말고, 오직 자신의 믿음을 주님으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아 인침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철장으로 다스리시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시겠다”는 말씀을 경히 여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자신은 교회에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세상 전체가 큰 파도와 같이 휩쓸어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안전할 것 같지만, 주님의 손길이 없다면 절대 안전하지 않음을 빨리 눈치 채야 할 것입니다. 더 더욱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의 재림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이며, 제일 먼저 교회를 손보신다 하심에 대하여 경홀히 여기며 에이 정말 그러겠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포심을 유발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재림이라는 대목을 글귀 그대로 남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잘 해석해 보세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인류 심판을 위한 예비된 재앙을 내리심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 재앙에 의해 고통 받고 죽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마지막 때 온전한 성도들을 피난처로 이끄실 성령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은 자신의 모든 자아적 요소(생각, 지식)들을 뛰어넘고, 타협하기 쉬운 현실도 거스릴 수 있는 자들만 이루어낼 수 있으므로 자신의 현재 상황을 믿음적 요소로 재검해 보아야 할 것이며, 믿는 자 모두는 순결한 자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펼쳐 놓은 일이 많으시다구요.. 하여튼 영원한 안식에 거할 영원한 나라로 향하기 위하여 눈치가 빨라야 하는데, 열 달란트 비유를 적용하기는 그러하지만, 본인들이 책임질 일이므로 제가 왈가왈부 할 것은 아니지만, 영의 하늘나라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므로 그리하데요 만을 알려드리며, 자세한 것은 성령님께 여쭙고 물어 보도록 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다고요? 아~ 그러면 알려달라고 보여 달라고 하세요! 저도 처음 믿을 당시 보여 달라고 매달렸더니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닌, 환경적으로 모든 것을 관장하심을 알려 주시므로 제가 알았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온전한 중심으로 깨어 눈치 빠르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가며, 주님 부르실 때, 장차 올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기쁨 중에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구별된 신부가 되시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