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나라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라는 말속에는 다양한 속설(俗說, 세간에 전하여 내려오는 설이나 견해)을 추측할 수 있는 많은 여지가 있으며, 어떤 의도에서 이였든지 간에 시간이 지나므로 인하여 그에 대한 속성의 결과들이 하나 둘 튀어 오르는 것 같습니다. 경험치 못한 것을 경험케 되는 나라와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를 무척 기대하였지만, 주위에 들리는 소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능으로 능력이 없다.“로 허를 찌르며 일갈되는 촌철 살인적 대사는 느낌으로 확~ 와 닫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능력과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닌, 일개의 신앙인인 촌노의 판단과 정죄를 통해 성령을 근심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단지 그 말속 깊은 곳에 움츠리고 똬리를 틀고 있는 그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발로 때문에 한번 짚어보자는 것입니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우에 있어서는 두 가지 측면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데, 하나는 토네이도급의 카오스적 혼란의 아비규환 그 자체이거나, 그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강한 느낌으로 인해 기대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 했다라고 하는 표현을 하게 되는 상황의 둘로 간단하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의미적으로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를 이를 것이라는 하는 상황에서 모두는 공황장애에 봉착하게 될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며, 후자의 경우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굶주림으로 허겁지겁 폭풍 흡입하여 공복감을 벗어버리고, 기대했던 그 자체를 두 번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양껏 한없이 즐기고자 함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물론 정치적 견해를 읊조리고 씨브렁 대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단지 마지막을 향해 치달리는 시대를 살아가며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보게 되는 역동성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함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오시기 전, 재림의 날이 오기전의 7년 환란이 전인지? 후 인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함에는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동안 경험치 못한 전혀 다른 나라와 세상이 동반될 것이라는 추측과 예측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우리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환란은 환란일 뿐으로 현재의 상황과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며, 나타나는 현상만 다를 것이라고 함에는 인간 세상은 여태 한 번도 다른 적이 없었으며,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신앙이 있다는 자들의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설로, 나타나는 모습만 다르게 나타날 뿐일 것으로 그래야만 사탄마귀 입장에서 인간들을 미혹할 수 있으며,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다 알아채기 때문이라 합니다. 실제 삶에서 이런 변을 듣게 되는데, 성경을 왜? 읽고 뭘? 이해했다고 하는지? 답 없음에 제 머리가 하얗게 되는 화이트아웃이 발생합니다. 결코 멈출 수도 없고, 다시 살아낼 수 도 없는 삶에서 일관되게 고정된 매순간을 살아내며, 절대자께서 다림줄로 이끌어 가심을 제대로 느끼거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라고 하는 생각조차 미동 없음이 극렬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 과연 믿음은 있을까? 라는 의심까지도 해보게 됩니다. 그렇게 오래 다니고 오래 앉아 줄창 읽어 대었건만, 가장 중요하며 자신을 위하여 진정으로 소중한 대목에 가서는 불신앙자와 거의 진배없음으로 만들어버린 사탄마귀들의 전략과 전술은 기가 막히게 치밀했었음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죄악으로 온통 오염되거나 타락하지 않은 새로운 질서에 의해 새롭게 창조될 온전한 세상인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가는 시점에 있어서 사탄마귀는 한가하게 휴가 떠나 선글라스 쓰고 쉬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적 사고로 접근하여 그의 나라와 뜻을 이해하고 행함을 이루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쪼가리 끼리 꿰어 맞추고 지가복음으로 누더기를 만들어 벌임에 따른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믿음이란 단어에 당연히 따라붙는 수식어 “순교”는 미사여구이거나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삶 자체에서 자신을 죽이거나 불모의 지대에서 믿음의 영역을 확장하다 삶을 불살라야만 하고, 신앙 자체를 거부하는 현장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야 됨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자기가 믿는 종교, 즉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까지 잃게 되드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굳건함을 지녀야 믿음을 지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됨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두 가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제약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고 편안한 영원한 세상에서 삶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의 사실과 축복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기에 얄미로워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자들의 방해공작에 따르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경험해 보지도 못한 세상”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추스려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