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Pipe)는 기체나 액체 등을 이동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속이 빈 긴 형태로 만들어진 물품으로 파이프의 굵기는 파이프의 안지름을 말하는 것으로 파이(π)를 활용합니다. 일반적으로 파이프의 내압과 충격강도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보다는 “파이프의 수용”이라는 측면에 A라는 파이프가 B라는 파이프보다 내경의 사이즈가 크다면 B에서 A로 향하는 기체나 액체는 수용가능하지만, 사이즈가 큰 A 파이프에서 사이즈가 적은 B 파이프에 용량을 최대한 보낸다고 가정해보면, A와 B사이의 입구에는 버틀랙(Bottleneck)이라고 하는 병목(정체)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교 생활을 영위해나가며 굉장히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이 겸손하지 못함에 있음을 여실히 느끼는 부분으로 자신이 아는 사실을 표출하여 강요함에 따르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파이프의 수용적 차원에서 같은 종교의 세계라 하드라도 각자의 입장과 은혜의 차원에 따라 서로 다름이 존재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완전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온전함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 영역에서 자신이 알고 느끼어가는 인식과 인지적 차이는 상대적으로 격차가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자신만이 지니는 경험과 인식, 인지적 차원의 세계를 남에게 수용하라고 우겨버리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는 황당 그 자체로 왜? 우리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합리적이며 성숙된 자세에서의 권면을 못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어 버립니다. 제대로 된 내용과 수용 가능한 용량의 퀄리티를 함유하고 있다면 이해가 안되드라도 아~ 그러할 것이구나~ 나도 노력을 해 보아야지 라는 생각을 통하여 행동에 옮기게 될 터인데, 아니면 안된다는 죽기 살기로 우겨대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립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면 태어나면서 부터 은혜로 능력을 달란트로 장착하고 나오는 경우를 빼고는 생각하는 것이나 인식과 인지하는 차이는 거기에서 거기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가게 됩니다. 양질의 교육과 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며, 스스로 인식하고 각고의 노력함에 따라 차이는 또한 있을 수 있겠으나, 오십보백보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스스로 오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를 감안한다면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 스스로는 거기서 저기로 유사하지만 아주 전혀 다른 속성값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상대에게 우기기전에 자신의 속성값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만일 처음으로 신앙을 접하는 경우라면, 기본적인 진리와 추구되어야할 방향성 및 믿음의 성숙을 위한 자세 등에 관하여는 자신의 경험을 제시할 수는 있겠으나, 같은 조건과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 믿음을 숙성시켜 온 상태라고 한다면 앞서 제시한 “파이프의 수용론”에 대하여 깊이 있는 침잠을 통하여 생각해 보아가며 우겨대는 행위를 자제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같은 종교를 지향하는 입장에서와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허울 좋게 우겨댐으로 그 좋은 소식의 엑기스는 난상의 대응을 통하여 바람이 들어가므로 인하여 퇴색되고 변색되어 노이즈나 결과 없는 짖어댐의 공염불로 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하지 못하며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의 우겨댐의 행위는 진정 내려놓는 연습을 제대로 하여야 함이 필요해 보이며, 무식하며 용감한 우겨댐은 자신의 본 모습을 민낯으로 드러냄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한 영적성숙의 암적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지몽매함과 인간적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자신의 영성을 극대화해 나가야 하며,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는 부분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는 절대할 수 없음을 토설하고 능력과 은혜 주시기를 갈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현상계를 바라볼 수 있는 육안(The Eyes)은 솔직히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이 절대적이나, 영적인 동물로서 영계를 넘나들거나 들여다 볼 수 있거나 보는 영안(Spiritual Eyes)은 절대자의 은혜로 주어지며, 마귀의 세상에서도 천상의 것을 모방한 “제3의 눈(The Third Eyes)" 조차도 마귀들에게 인정받는 자들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세 가지, 신명기 29:4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 듣는 귀는 하나님의 마음(뜻, 계획)을 읽어낼 수 있는 심안(The Eyes of Mind)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강림하면서 열리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심안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비밀의 열쇠(Secret Key)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참 믿음의 소유자라는 확고부동한 증거(The Proof of Brides of Jesus)라 할 수 있습니다. 심안으로 마음의 눈을 뜬 자에게는 더 이상 믿음을 강요하지 않아도 됨은 영생의 세계를 본 자에게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닌, 실존(Existence)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 소명이 무엇인지, 어떤 고난이 와도 성화의 단계를 밟아 주님을 닮고 마침내 하나가 되어야 함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고 접근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