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학거사 Nov 22. 2021

비로서, 철이 들어감은..

요즘은 세상 자체가 무엇에 쫒기는 지 앞뒤 안 재고 엄청 서두른다는 느낌을 지워낼 수 없고,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사안들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뭔가?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폭풍전야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 소리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관심 두지마시고 지나치시면 될 것 같고, 편안히 계시는데 불편을 끼쳐드렸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으로 정중히 사과드리니 심려마시고 오가시는 길에 뒤로 넘어져 대갈통 깨지 마시고 잘 살펴 다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포성과 포화만 없지 이 세상은 빛과 어둠의 전쟁 전야로 휩싸여 있으며, 대각성(Great Awakening)을 통하여 자유와 함께 영원으로 차고 넘치는 빛의 세상으로 가느냐? 아니면 Great Reset을 통해 공포의 어둠으로 진입하느냐? 의 운명적 양 갈래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 있어서도 전쟁은 있어서는 아니되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는 전쟁과 물적 폐해를 입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결과는 아주 참담하거나 승자독식을 통한 영원을 쟁취할 뿐만 아니라 심판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정통과를 위한 책임의 값이 설정되는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는 그에 관한 상황과 내역을 정리한 시사용어들을 잘 구분하여 용어적 해석을 선행하고 원론적 근거를 확보하여야만 할 것으로 그냥 뉴스나 시사 경향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치우침으로 중심이 편중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플렉스를 통하여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수억만 뷰로 회자되어 모르면 간첩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사적 동향과 흐름을 꽤 뚫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지역적으로 한정되는 동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에 따르는 그 말과 행동에서는 분명 건질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따름일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우주적이며 무한광대하며 무소부재한 관점을 공자왈 맹자왈 한다고 와~ 감동적이며 대단하다는 느낌은 시대적인 인정과 하늘로 상달되지 못함 또한 명약관화할 것입니다. 지식이 있고 정보에 도통해 잘난 것이 아닌, 우는 사자와 같은 존재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의 전 영역에서 어떠한 흐름으로 메인스트림을 진행시키고 있는가? 정도는 옛적의 고리타분한 교리가 어떻고 라는 대목보다는 현시점에서 믿음 상실의 의도와 방향성 정도는 인식되어야함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위를 돌아보면,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여 안타깝고 함께하지 못하여 서운하다는 표현을 종종 듣게 되는데.. 뭘? 함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함은 그렇다 손치드라도 함께하며 시대적으로 뭔? 결과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는 것인지? 에 대한 의문은 마음 한구석에 짙게 깔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이지 못하게 된 이유와 근거가 무엇이며 그 속에 감추어진 것들에 대한 의문이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믿는다는 것이 말씀 속 요한계시록이 풀린 두루마리로 풀려 실현화되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도가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그리 표현해보는 것입니다. 분명 주님은 누가복음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으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성령의 울림으로 곳곳에서 제시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여 세상 읽기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것도 아닌 말씀을 통한 영적 분별력을 지니고 세상에서 현실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고 분별하라는 말씀이실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장땡이거나 더욱이 무섭고 혼란스러워 찌그러져 구멍이나 파고 있으라는 것은 절대 아닌,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믿는 자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의 영적각성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이라 저는 철썩 같이 믿습니다. 그 말씀은 이 세상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성경이 제시하는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쉽도록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지극히 자세히 제시해 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는 사자들이 족대와 투망으로 걷어버리기에 안달하는 측면을 제대로 인식한다면야 그에 대한 집중기도로 주님께 꼬질러 은혜주시기를 통하여 스스로를 보전할 수는 있다 할 수 있지만.. 왜? 모여야 되는지 저는 진정 지금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율법으로도 아니되므로 실제 현현하시여 육신으로 오실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사 저는 조금이나마 그 이유를 알 것 같고, 인간들의 무지몽매함과 지극히 완악함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통하여 불순종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다시오시기전에 성소의 휘장을 찢어주시고 평신도와 만민을 제사장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셨으며, 물리적으로 구성된 교회가 아닌 가정교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를 때가 이르므로 정확하게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검을 똥을 누어봐야 철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다른 의미로는 아이를 낳고 길러 보아야 철이 든다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저 스스로 세상의 징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열일을 넘어 진정으로 인간들을 사랑하시매 공의적 측면 기반 이래의 철저함속에 속깊은 은혜와 배려가 숨겨있음을 발견해내며 더욱 신령과 진정으로 몸둘 바를 몰라해하고 있습니다. 본질적 불완전함과 더불어 철없음에 어눌하고 미숙함을 지닐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철들었다 말할 수 있다면 그동안의 수용적 자유로움으로부터 하여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함은 예의와 직결되기 때문에 단순명료하게 구분하여야 합니다. 무작정 스스로의 생각이 옳다 여기는 것은 철부지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철들면 아무려면 어떠리라는 생각 자체는 무책임의 소산으로 말로만이 아닌 인내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서 행하는 행동이나 중심으로 본을 보여야만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요한계시록의 풀린 시나리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