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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Jun 08. 2020

위로가 아니라 직시가 필요할 때

사회학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 생각해보면 본격적인 사춘기는 취직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그럴듯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대기업에 들어가면 삶의 조건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삶의 조건이란 게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남들처럼' 화목한 가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었더랬다. 순진하게도.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메시아도 아니고 당연한 거였다. 여전히 집은 나에게 가장 불편한 곳이었다.    

대신 흥청망청 살아봤다. 아침에 눈을 떠서 회사에 나가고 비싼 뮤지컬을 보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 입고 화장품을 샀다. 비행기표를 끊어서 멀리 여행을 가고, 명품백도 사봤지만, 여전히 집은 술에 취해야만 들어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집을 나올 만큼 모질지는 못했다. 결정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즈음 조안 루빈-뒤 처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베르벨 바르데츠키의 <여자의 심리학>을 읽었다. 지금은 그 내용이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책장 넘어가는 것조차 아까워하며 숨을 죽이며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김춘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했는데, 나에겐 심리학의 언어가 그랬다. 아무리 채우려고 애를 써도 블랙홀 같은 마음이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이름을 가지고, 그 존재를 드러내었다. 비로소 나는 땅에 발을 딛게 설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뒤늦은 사춘기를 '정상성'이란 배에서 내리지 않고 무사히 건넜다. 칼 로저스 아저씨, 융 아저씨, 벡 아저씨 다들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하하 


   심리학에 대한 짝사랑의 정점은 상담심리학과 편입이었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 사람들이 비신자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그런 마음과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아주 쉬운 길이 있으니,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잡아주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졸업은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왜냐하면, 나의 신앙이 이제 쫑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다. 심리학에서 수많은 학자가 있고, 분파가 있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동일하다. "네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너 자신뿐이야. 그러니 자 네가 변해보자" 

인지주의 심리학에서 아론 벡 아저씨는 나의 잘못된 신념을 바꾸라고 하고 사람 좋은 칼 로저스 아저씨는 긍정적 관심과 공감을 해줄 테니 위로받고 네가 변하라 한다. 삶의 조건은 변하지 않으니, 성격을 바꾸던 사고방식을 바꾸던, 마음을 다시 먹든 네가 변해서 정신줄 잡 잡고 다독이며 살아가라 이야기. 어찌 보면 심리학의 태동부터가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하나의 개인으로 살아가느라 힘든 사람들을 이야기를 들으며 생겨난 것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에서 얻은 수많은 조언에 따라 나는 살만해졌다. 나를 사로잡았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 책임이 아닌 일에 더 이상 나를 다그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살만해졌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특히 내가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아도, 내 삶의 조건은 상수가 아니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나선 나는 인터스텔라처럼 다른 차원으로 이동을 했다.  가장 큰 것은 이제 내가 나의 조건이었던 부모를 벗어나 내가 누군가의 조건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키워낸다는 것은 내 마음을 다 잡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에 심리학에서 배운 것을 생각해가며 아이를 키우려고 했다. 특히 대상관계 심리학에 심취했었다. 내가 생애 초기 엄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이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분리 개별화' 그리고 '재접 근기'에 이상적인 엄마가 되고 싶었다. 교과서를 여러 번 읽고,  교과서에 있는 아이의 개월 수에 따른 행동과 내 아이의 행동을 비교하고 나의 태도를 반성하곤 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는 아이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일도 해야 했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다. 책도 읽고 내 시간도 가지고 싶었다. 다시 새로운 죄책감이 나이테처럼 한 줄, 두 줄 쌓여갔다. 아이의 모든 날 선 행동이 내 이기심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기대되는 "모성애 가득한 엄마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나를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가 내 전부가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죽고 싶었지만 너네들 때문에 참고 살았어"라는 엄마 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것인지 헷갈렸다. 

    

   그러던 중 지인의 블로그(라고 쓰고 엄마 되기 민낯을 쓰신 신나리 작가님의 매실 독서단이라고 읽는다.)에서 몇 권의 사회학 책을 만났다. 알리 러셀 훅 실드의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 조주은 "기획된 가족", 엘리 자스트 벡 게른트하임 " 모성애의 발명,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 하임 부부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을 읽었다. 

   내 귀에 솜사탕처럼 속삭이는 것 같았던 심리학 책과 달리 사회학 책은 거칠거칠한 현미밥 같았다.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심리학과 달리 사회학은 그저 현상을 이야기해 줄 뿐이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자 사람"에게  "엄마 역할" 족쇄가 어떻게 채워지는지 증거를 제시하며 하나씩 까발려줄 때의 통쾌함은 대단했다. 심리학이 "우쭈쭈 고생했어. 자 이 사탕 하나 먹고 힘내렴"이라고 나를 달래주었더라면, 사회학은 " 자 봐 눈을 크게 뜨고 봐 봐. 이게 현실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나도 몰라. 그건 네가 생각하렴"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회학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나는 내 모성애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이것은 어쩌면 동물적인 감각이다.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만 까져도 마음이 쓰린다. 그러나, 아이가 무릎이 까진 것은 아이가 넘어지기 전에 내가 미리 잡아주지 못해서 혹은 무릎보호대를 미리 채워주지 못한 내 탓이 아니다. 이 사회가 강요하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다 하지 않아도 나는 아이에게 충분히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좋은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모성애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아이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지, 나를 지우고 그 자리를 아이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또 심리학 책을 펴고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당위적인 위로보다 구조 속의 나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더 소중하다. 더 혼란스럽고 더 불안해진다고 하더라도, 위로받지 않고 정확히 내가 서 있는 곳 동시에 끊임없는 변하는 삶의 조건을 눈을 부릅뜨고 알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사회학 책을 좀더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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