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연습.
이미 현관문을 나섰어야 하는 시간까지 침대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은 아이.
이유를 알 수 없어 달래기도 했다가 화내기도 했다가 협박도 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 아이는 이렇게 화가 났을까?
왜 이렇게 아이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을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고 엄마는 무섭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소리 지르는 내가 한심했다.
바보같이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아이는 줄곧 엄마와 이제 같이 살고 싶지 않단다.
엄마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말에 할머니네 집에 데려다줄 테니
거기서 좀 지내다 오라고 했다.
아이가 진짜 듣고 싶어 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닌 것은 알지만
진짜 마음을 말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으니 표면적으로 말하는 바라도 들어주겠다 한 것이었다.
아이는 짐을 싸는 시늉을 하는 나를 보더니 올음을 터트린다.
아이를 앉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래 봤자 전쟁 같은 아침 시간에 3분 정도..)
아이는 유치원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다시 울먹이는 아이.
더 실랑이할 여력도 없어 계란 프라이 후딱 해서 먹이고 있는데 아이가 말한다.
전말은 이렇다.
사실 나도 늦잠을 잤다. 평소에는 내가 먼저 일어나더라도 잠든 아이의 귀에 "엄마는 먼저 일어나서 준비할게. 빈이는 이제 잠에서 나올 준비하고 뒹굴거리고 있어. 엄마 다시 올게"라고 귓속말을 해주는데 오늘은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후다닥 씻으러 갔더랬다.
아마도 내가 씻는 사이 잠에서 깬 아이는 방에 혼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으리라.
아마도 엄마가 없음을 알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누워 있었겠지. 무섭고 당황해하면서.
씻고 나온 엄마가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을 하는 순간, 반가움. 서운함. 안도감. 짜증 본인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어찌할지 몰랐을 거다 싶다.
아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엄마 나는 일어나기 싫어. 엄마 나는 엄마가 싫어. 엄마 저리 가!"
아이의 마음을 알리 없던 나는, 아침부터 왜 그래? 얼른 일어나 라고 채근을 하기만 했으니
아이 입장에선 서운할만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어렸을 때 경험했던 꼭 같은 감정이 떠올랐다. 너무 서운해서 토라졌는데 오히려 혼이 나던 순간들. 그때의 더 큰 서운함과 당혹스러움.
아이에게 늦었지만 마음을 이야기해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네가 마음을 이야기해주어서 엄마는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네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몰라서 계속 너를 서운하게 할 수도 있었을 거 같다고.
다음번엔 먼저 일어나더라도 꼭 너에게 이야기 해주겠다고.
당연히 아이의 모든 감정과 마음이 다 내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모는 되고 싶다.
다음에는 아이가 이유없는, 아니 정확히는 내가 이유를 모르는 짜증을 냈을 때
내가 혼자서 화냈다 혼냈다 협박했다 하지 않고, 딱 3분만 아니 딱 1분만
아이가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