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시위는 평화로웠다.

마지막 시위

by 노연석

15년 전 부평 자동차 공장 앞.

자동차 동호회원들의 차로 도로는 가득 매워졌다.

그곳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엄숙했고 엔진 결함으로 언제 멈추어 설지 모르는 차의 오너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제조사 정문 앞 한쪽에는 휘발유 통(빈 통)으로 탑을 쌓아 놓았고 그 옆에는 리콜을 시행하라는 문구들이 빨간색 글씨로 도배한 차량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조금 저 끝에는 휘발유 통하나 가 기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제조사에서 우리를 기만하는 행동을 한다면 금방이라도 불을 질러 버릴 것 같은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화시위를 추진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의 심정을 표출하는 퍼포먼스였을 뿐이었다.


자동차의 결함은 나의 생명을 아니 가족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위에 동참한 동호회 회원들이 많았다. 그날 공장의 사람들과 공장 밖의 경찰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약속한 대로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고 우리의 요구 조건을 외치고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퍼포먼스 그리고 공장의 주변을 차량으로 몇 바퀴 도는 행사로 마무리하는 평화 시위를 진행했다.


그 후 대규모 리콜 소송을 진행했으나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싸우고 기다렸지만 우리의 바람은 씁쓸한 결과로 돌아왔다. 법원에서는 자동차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우리는 대기업을 상대로 무모한 짓을 한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도 그랬다.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 보겠다고? 제정신이야?"

우리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했었다.

대기업의 횡포와 맞서 싸웠고 패배하기는 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모든 자동차 생산 업체에 우리의 위엄은 간과할 수준은 아니었고 긴장하게 만들었었다. 조금의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은 우리의 활동이라고 나는 자부한다. 그로 인해 아직도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의 목소리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는 못한다.

결국은 상생을 하는 구조로 발전해 가고 있어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생생은 결국 강자의 의도를 따라 갈수 밖에 없다.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나의 회사 방송국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동호회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인터뷰에 응해 줄 수 있느냐고? 동호회 회장, 회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그 자동차 동호회의 회장이라는 것을? 누가 연락처는 준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고민은 뒤로하고 결정을 해야 했다.

인터뷰는 리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 갈 또 하나의 기회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 인터뷰에 나갈 수가 없었다. 회사 방송에 내 얼굴을 들이 밀 수는 없었다. 그래서 PD와 일정을 정하고 "죄송하지만 저는 그 인터뷰에 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희 동호회 회원들을 내 보낼 테니 양해 바랍니다."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동호회 활동을 오래 시간 해온 친구들로 멤버를 구성하여 인터뷰를 진행 시겼다.


그 방송은 몇만 명 이상에게 노출되는 방송이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아 망설였지만 동호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리콜 운동에 대해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허락을 했다. 내가 소유한 차량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자동차 리콜, 소비자를 기만하는 자동차 회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활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난 후 회사 방송팀에서는 약속대로 방송에 우리 동호회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어 주었다.

나는 아침에 사무실에 앉아 조용시 숨 죽이며 그 방송을 보고 있었다. 내가 그 동호회에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 방송에는 우리 동호회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다른 동호회들도 그 날의 뉴스거리가 되어 주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도 뉴 노멀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를 밴치마킹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회사도 변화의 사이클이 도래했기 때문에 그런 모델을 찾고 있었다고 난 생각했었다.


동호회는 지속적으로 자동차 회사에 강력하게 항의를 지속했지만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하지 않았다. 최근 기업에서 유행하는 집단지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때 보여 줬는지 모른다. 비록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 시절 동호회 활동을 할 때 만큼의 열정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활동은 나에게 많은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회사를 상대로 한 시위. 그리고 마지막이 된 그 시위.


리콜 소송에서 패배 후 조용히 살아야 했다.

내 차는 그 자동차 회사가 권고하는 리콜을 받지 않은 덕분에 길거리에 멈춰 서서 운명을 다했고 100km가 넘는 거리를 견인하였지만 좀 많이 나온 견인 비용이 부끄럽게 그 차는 결국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카센터 사장님도 더 이상의 회생은 의미 없다고 사망 선고를 해 주셔서 미련 없이 떠나보냈다.


미련 없이 폐차를 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해준 애마에게 그렇게 보내야 했던 것이 미안했다. 생명이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내 자동차도 나를 떠나야 한다는 것에 슬퍼했을지 모른다. 폐차 후 남는건 견인비를 빼고 남은 몇만원의 고철값 이었다.


우리는 어떤 것에든 핸디캡 하나는 가지고 있다. 나와 같은 동호회의 사람들의 자동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핸디캡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동등하게 취급될 수 없다. 나의 자동차 동호회 활동은 우리가 소유한 자동차의 핸디캡이 자동차 회사에서 잘못 만들었다고 확신했었지만 비참하게도 우리는 그 회사와 싸움을 벌이며 젊은 날에 쓸모없는 소모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이 많은 시간이었다.


우리의 시위와 리콜 활동은 국내 최대 규모였다.

그러면 무엇하나?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움은 남는다. 그 소송은 우리 동호회와 연합 동호회 그리고 리콜 사이트에 가입해 동참한 일반인들에게도 뼈아픈 상처를 남겨준 사건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회사는 승승장구하며 아직도 살아남아 활개를 치고 있다.

세상은 누구의 편인가?

세상은 늘 강자의 손을 들어준단 말인가?


<커버 사진 출처 : jmHwang'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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