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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May 30. 2021

선한 오지랖 그리고...

나는 어떤 오지라퍼일까?

   내 안에 있는 나도 몰랐던 자아가 출몰하여 세상 일들에 전지적 참견을 하는 일. 오지랖.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도 어려운 인고의 시간들을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하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  회의를 하고 있는데 어떤 주제에 대해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 또는 모르는 척하는 상황이 도달해 있을 때 왜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평소에 조용하게 살다 갑툭튀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사는 때를 놓칠 새라 이야기합니다.

   "어, 그럼 그건 김 프로님이 진행해 주시겠어요?"

   "네?"라고 부정적인 의문문을 던져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괜히 일만 하나 늘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일복을 타고 난 운명인 걸 그냥 저항 없이 순순이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뭐, 못 할 일도 아니니까요.


   살다 보면 오지랖을 부리는 일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만 그 오지랖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지라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오지랖도 선한 오지랖이 있고 배려라는 탈을 쓴 오지랖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한 오지랖의 예를 인터넷 뉴스에서 찾아봤다.

#. 한 자치구의 통장인 A 씨는 한 가정의 문 앞에 주 3회 배달되는 복지관 도시락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동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집으로 들어가 확인한 결과 B 씨는 오랜 기간의 식사를 거부해 탈진한 상태인 데다 심신도 허약해져 있었다. 동주민센터는 돌봄 SOS센터 서비스에 연계해 식사와 거동이 불편한 B 씨의 식사와 청소 등 주거환경 개선을 도왔다. 또 서울형 긴급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치매검사를 실시, 현재 B 씨는 치매안심센터를 통한 정서치료도 받고 있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기사에서 보여주는 사례와 같이 선한 일에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대 환영받을 일이다. 


    최근에 보았던 오래된 영화 중에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 역할을 맡은 나문희 여사가 영화 초반에  구청 직원들이 피하고 싶을 만큼 민원접수를 많이 해서 꺼려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주변의 불합리한 것들을 찾아내고 시정 조치를 요청하는 일을 습관처럼 해 나가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선의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오지랖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선한 오지랖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플라스틱병을 분리수거할 때 라벨을 벗기고, 뚜껑은 분리하고 병은 최대한 작게 만들어 분리수거하고, 캔은 압축해서 분리하는 방법들을 영상매체나 팸플릿 등을 배포하여 더 효과적으로 수거하여 재활용률을 높이는 일과 같이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리면 거부감을 갖지 않고 동참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선한 오지랖 트렌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한 오지랖보다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불편함만을 주는 오지랖 아주 넓은 분들이 있습니다. 남의 일에 사사건건 지나치게 참견을 하고는 합니다.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 주려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참견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잦은 참견과 관심의 표현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한두 번이야 괜찮겠지만 반복되면 매우 불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오지랖이 넓다고 생각한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각자 먹고살기 바쁜데 남의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굳이 찾아보자면 대부분의 부서장들이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까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부서원들과 면담을 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사실 꺼내지 말아야 할 오지랖을 발휘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부서원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을 하고 꺼내는 관심이겠지만 그냥 오지랖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그만큼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불쑥 오지랖이 발동을 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를 하고 세상 경험 많으신 어르신 한 분이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사사건건 사람들에게 참견을 하고 심지어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은 동대표가 누구인지 조사를 해서 카페에 글을 게시하는 등 도를 넘은 참견을 하시는 덕에 아파트 주민들의 구설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그분 조용히 살고 계신 것 같은데...


   오지랖이 넓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나도 그런 사람은 아닌가 점검해 보고 그런 나를 발견했다면 오지랖을 조금씩 줄여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심풀이로 자신의 오지랖은 어떤 유형 일지 테스트해 보세요. 저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도움을 주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심사숙고 오지라퍼"라는 내용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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