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있어 걸을만하다.
점심 산책, 오늘도 걷는다.
여름의 매서운 맛을 제대로 보여 주는 날씨, 그런 날씨라도 이렇게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
점심을 먹고 회사 건물을 빠져나와 평소와 같이 산책을 나선다. 찌든 듯한 더위는 아직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입으로 마셔지는 공기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곧 쏟아지는 태양빛의 열기는 이내 내 정수리를 뜨겁게 만들고 이 여름의 위엄을 실감하게 만든다.
이 무더위에도 점심식사 후 산책은 계속하고 있다.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걷는 거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 시간만이라도 지키는 것으로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는다. 어쩌면 작년보다 게을러진 마음이 하루 걸어야 할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걷는 그 길 위에 사람들이 예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걷는 사람들도 그늘을 찾아다니며 뜨거움을 피해 가며 걷고 있다. 양산을 쓰고 다니는 동네 사람들이 보인다.
다행히도 어제는 하늘에 구름이 많았다. 이렇게 가끔 태양은 구름 속으로 수줍은 듯 자취를 감추어 잠시나마 그늘 속에서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도 잠시, 다시 구름 속을 빠져나온 따가운 햇볕은 마치 천당에서 지옥으로 들어서게 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구름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나마 뜨거운 태양을 가두어 달아오른 내 볼의, 내 정수리의 열기를 식힐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네가 있어서 그래도 걸을 만 하구나. 네가 있어서 주변의 식물들도 사람들도 잠시나마 얼굴에서 미소를 짓게 만드는구나.
파란 하늘에 구름의 풍경이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는데 내가 잊고 산건, 네가 태양을 가려준 덕분에 세상의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이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는 것, 그런 너의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어쩌면 하루 종일 구름 가득한 하늘이라면 태양을 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한여름날의 뙤약볕 아래 모든 만물들은 새삼 구름이 드리워준 그늘에 감사해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뜨거운 태양빛을 벗어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짧은 시간, 내가 걷는 그 길 위에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보다 걷는 내내 나를 뜨거운 열기로 나를 괴롭힌 태양, 그것을 막아 주며 시원함을 선사한 너, 구름에게 온통 신경을 쓰며 걸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길을 걸으며 함께 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는 것을 사무실로 돌아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늘 내가 걸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나저나 농사 걱정하시는 분들, 열대야로 잠 못 이루시는 분들을 위해서 비가 좀 내려 줘야 할 것 같은데 오늘도 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