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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멍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by 노연석

창문 너머로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더 시끄러워졌다.

비로 인한 자동차의 타이어 마찰음이 더 커져고 평소보다 차가 많지 않음에도 더 시끄러워졌다.

타이어의 마찰음에 이끌려 창가에 섰다.

창문 너머로 빗방울들이 춤을 추고 있다.


20층에서는 빗방울이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땅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관찰할 수도 없다.

땅으로 곧게 떨어지는 빗방울도 관찰할 수도 없다.


20층에서 보는 빗방울들은

사선으로 날리고, 때론 좌우로 이동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다시 하늘로 솟 굳히기도 한다.

지난겨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눈꽃과 같이

빗방울도 하늘에서 춤을 추다 땅으로 내려앉는다.

그러나 내 눈앞을 지나간 빗방울이 땅에 내려앉는 것은 여전히 볼 수가 없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빗방울도 다 같은 크기가 아니다.

가끔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는 굴은 빗방울이 보인다.

같은 시간에 내리는 빗방울이라도 다 같지는 않다.

사람들의 생김생김이 모두 다르듯이 말이다.


바람에 흩날리던 빗방울이 창틀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다.

부서진 빗방울의 입자가 내 얼굴을 스쳐 지난다.


20층에서 보이는 비의 존재는 1층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점도 있다.

세상을 모두 짙은 색으로 칠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나뭇잎은 더 짙은 녹색으로, 아스팔트는 더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습도가 점점 짙어져 간다.

이제 곧 창문을 닫지 않으면 온 집안이 습기를 머금고 축축한 하루를 만들 것이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비로 인해 증폭된 자동차 바퀴 마찰음이 귀속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평생 듣지 못할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란 생각을 해 본다.


토요일 아침, 비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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