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탈출

시골에서 즐기는 오랜만의 여유로움

by 노연석

토요일 아침 평소보다 게으름 피우다 일어나 생각해 보니 시골에 가기로 한 날이다. 눈은 떴지만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다시 잠을 이어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다들 자고 있을 시간 이른 시간부터 라면 물을 올린다. 시골에 가려면 그래도 2시간은 가야 하는데 빈속으로 갈 수는 없기에 라면이라도 끓여본다.


시골에 가야 하는 이유는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주방 등이 고장 났다고 손봐달라고 하시는데 등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머니가 손을 못 대신다. 마침 집에 놀고 있는 등이 있어 주섬주섬 챙겨서 집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 의외로 차가 많지 않다. 고속도로에 차는 많지만 제한속도까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가끔 막히는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며칠 전 뒤를 따르던 트럭이 너무 빨리 달려오다 내 차의 뒤를 칠뻔한 사건이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날 때쯤 속도계를 보니 제한 속도를 넘겼다. 속도를 줄여 차간 거리를 멀리해 본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니...


시골은 언제나 한산해 보인다. 논밭에 일을 하시는 어르신들, 벌써 벼는 익어가며 고개를 숙이고 추수를 기다리는 듯하다.


요즘 날씨가 많이 선선해 지기는 했지만 이곳 철원은 더 시원하다. 비가 계속 오지 않아 걱정하시는 어른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불어대는 애꿎은 바람만 나무란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일기예보를 보니 시골 어른들의 속도 모르는지 앞으로 보름간은 더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


밭에는 막 심어놓은 김장배추 모종이 말라죽지 말라고 수돗물로 물을 주고 있다. 문득 수돗물 사용료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보다 배추가 말라죽는 모습이 더 안타까우리라.


형광등을 교체하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고, 텃밭에 여름내 찬거리를 제공해 주던 오이덩굴을 치워달라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치우고, 봄에 마당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등들이 잘 동작하는지 체크를 해 보는데 동작을 하지 않는 게 몇 개 있는데 햇볕을 못 쬐서 충전이 안된 것인지 고장이 난 건지 알 수가 없다. 태양열판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것으로 마무리.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고추밭에 쳐야 할 농약을 사러 가야 한다고 채비를 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농협에 가서 농약을 주문해 놓고 보니 농사일도 못하겠다. 농약값이 이렇게 비싸서야 남는 것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저런 잡무를 마무리하고 나니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생각을 하다가 동생에게 톡을 해 본다.


"바쁘냐?"

'아니, 얘기해~ 괜찮아'

"안 바쁘면 철원 와라. 소주나 한잔하게 ㅋ"

'ㅋㅋㅋㅋㅋ 알았어'

맨날 바쁘다고 하던 동생이 웬일로 흔쾌히 승낙을 한다. 오늘 도시로 돌아가려다 일정을 바꿨다.

그러면 저녁에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봐야 할 것 같다.

늘 일이 끝나면 도시로 돌아오기 바빴는데 갑자기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어느새 키가 엄청 커서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리게 하는 해바라기, 그 뒤에 펼쳐지는 하늘은 높고 구름은 가득한데 비는 오지 않는다. 바람은 여름을 밀어내고 온 가을바람이 분명하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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