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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계절, 비요일 아침의 고난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지나간다.

by 노연석

오늘도 변함없이 일터로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우산을 꺼내 들었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비바람을 맞으며 출근길에 나서야 했다.

집을 나서, 처음 만나는 신호등. 먼발치서 빨간불에서 초록불에 변하는 것을 보고 "건너야 하나? 그러면 뛰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마무리할 틈도 주지 않고 달렸다. 서둘러야 할 상황도 아니고 다음 신호에 건너도 되지만 신호등이 어서 뛰라고 손짓 하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뛰어 첫 신호등을 급하게 건넜다.


시골이나 다름없는 곳에 살다 보니 버스 정류장까지 조금 걸어야 한다. 땅바닥에 고인 빗물을 피하고 파해서 걷다가 버스를 타야 하는 정류장 건너 거의 다 다랐을때 저 앞에서 버스 한 데가 정류장을 출발하여 내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도로에 고인 빗물을 사정없이 밟는 순간, 인도로 사뿐히 날아드는 날벼락과 같은 물벼락들의 향연을 상상하고 예고된 것처럼 물을 "쏴"하고 쏟아내었다.


나에게 날아드는 물벼락에 빠른 동작으로 피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나의 행동은 생각만큼 빠르지 못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앗. 이런 젠장"

물을 튀기고 간 버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굼벵이가 된 내게 하는 소리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기사는 유유히 버스를 몰고 사라졌다. 떠나가는 버스를 야속하게 바라보다 차가워져 가는 다리는 점점 더 비의 심술에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훌훌 털어내고 "이만하길 다행이다."라고 혼잣말을 해 본다. 완벽하게 뒤집어썼더라면 집에 다시 다녀와 할 수도 있고 회사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늦게 출근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일을 잊어버리고 출근에 집중해야 하는 이 시간 마음도 툴툴 털어버리고, 자리를 떠나며 조금 걸음을 재촉해 본다. 순간 오늘은 이렇게 지지리 타이밍이 맞지 않는 건가? 또 저 멀리 신호등에 다시 초록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다음 신호에 건너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걸어 횡단보도 앞에 섰다.

혹시 몰라 멀지 감치 섰지만 우려하던 상황은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빨간불은 자취를 감추고 초록불이 들어왔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나는 걷다가 멈춰서 한참을 서있었다. 한참이라지만 1-2초 정도 하지만 그 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건너편에서 먼저 횡단보도로 발을 내디딘 사람들...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려던 택시?

택시는 횡단보도와 10m나 떨어진 정지선을 넘어 언제 멈추려는지 기약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바라보며 불길함이 급습하던 찰나에 택시는 급브레이크를 느지막이 밟았다.


사람들은 이미 횡단보도로 서너 발 들여놓은 상황, 택시의 타이어는 비에 젖은 아스팔트 바닥을 길게 끄는 소리와 미끄러지는 소리를 내며 정차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도 그 순간 모두 시간이 멈춘 듯 발걸음이 같이 멈췄다.

1m만 더 밀렸다면 큰 사고가 날뻔했다. 순간의 상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들은 황급히 길을 건넜다.


택시와 사람들이 멈춰서는 것을 보고 아무 일이 없음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나서야 나도 발을 내딛고 길을 건넜다. 택시 기사는 미안하다는 인사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어쩌면 너무 놀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택시를 바라보며 길을 건넜다.


오늘 첫 신호등을 뛰어서 무리하게 건너지 않았다면 어쩌면 겪지 않아도 상황들을 마주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현실이다. 다행히 우려할 만큼의 심각한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오늘 하루는 무엇이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살면서 이런 갑작스러운 현상, 상황에 모두 다 잘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손 쓰지 못한 채 망연자실 바라만 봐야 할 때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 잘 대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격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처럼...


정신없던 하루의 시작만큼 스펙터클한 일은 없았다. 비의 계절, 비요일 답게 하루 종일 대지를 적셨고, 퇴근길마저도 촉촉하다 못해 흠뻑 젖은 길을 걸으며, 바람에 날려 우산 속을 파고드는 비도 맞아가며 고난의 비요일을 마감한다.


바가 와서 경험할 수 있는 일, 하지만 경험하지 않아도 될일. 그러나 운수가 조금 없던 오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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