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통지표가 나에게 가져다준 선물

운수 없던 날

by 노연석

그날따라 장마철을 제대로 실감하게 하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집까지 3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나는 그 비를 맞고 갈 수 없기에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리다 귀가하기로 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며 아름답지 못한 여름 방학의 시작은 장대비와 함께 했다.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자기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들어서는 순간 비를 맞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았다. 양쪽으로 늘어선 오락기기에는 벌써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빈자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재미없는 오락이라도 한판을 하려면 기다려야 했다. 오락을 하기 위해서는 동전이 필요한데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을 하려면 버스 매표소의 창구와 같이 생긴 곳이 있다. 주인장은 그 안에 앉아 동전으로 교환을 해 주며 하루를 보낸다.


오락실에 들어서면 구석진 한편에 가방을 두는 곳이 있다. 딱히 정리함 같은 것은 아니고 빈 공간에 가방을 마구잡이로 던져 두어 가방들은 항상 뒤엉킨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방이 그렇게 뒤엉켜 쌓여 있는 것은 이곳은 시골에서 유일 무의 한 이 오락실이라 언제나 학생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주 이용 고객은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치가 버스터미널과 근접해 있다 보니 학생들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러 온 사람들 중에 시간을 때우는 이 들도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아 보니 오락실은 없어지고 다른 가게가 운영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방들이 우후 죽순 생겨났을 텐데 오락실이 유지되기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날 나도 그곳에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 들과 어떤 게임을 할까 물색을 하며 게임에 빠져 버렸다.


사실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그냥 구경만 하면서 언제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빈자리가 나면 게임을 했는데 그날따라 운이 좋았는지 평소보다 더 잘되는 재미가 있었는지 푹 빠져버렸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라면 사실 재능이 없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진실은 돈이 없어서 였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에는 용돈이라는 것이 없었다. 어쩌다 용돈이 생기더라도 그 돈을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데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용돈이 두둑했더라면 게임을 좀 더 좋아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게임에 빠져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돈 때문 만은 아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는 소강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집으로 나가려고 산 다미처럼 쌓여있는 가방 더미에서 내 가방을 찾기 시작했으나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도 가방은 보이지 않았고 화를 내실 어머니의 모습만이 머릿속을 맴돌아 나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멍하니 가방 더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내 가방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사람이 없고 가방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이제 몇 개 남지 않아다. 더 이상 누군가 잘못 가져간 가방이 아닌 의도적으로 가져간 가방이라 생각하고 기다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가방은 모처럼 어머니가 모처럼 맘먹고 사주 신 신상 가방이었다. 2학기가 시작하면 가지고 다니라고 하신 걸 굳이 방학하는 날 들고 나와 잃어버리게 되어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청난 꾸질 함을 들어야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가방 안에 든 책과 성적표였다.


책이야 1학기가 끝나 더 볼일은 없었지만 생활 통지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나는 고심 끝에 도화지를 한 장 사서 예전 생활 통지표를 보고 양식에 맞춰서 자를 대고 그리기 시작했고 개학 후 아무 성적도 기록되지 않은 양식을 만들어 선생님께 제출했다. 어이가 없다는 선생님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자를 대고 그은 선은 완벽한 직선이 아닌 비스듬하게 그어졌고 그 위에는 인쇄가 아닌 손으로 쓰인 못난 글자들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바라보는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아니 어쩌면 노려 보신 것이 줄도 모르겠다. 워낙 눈이 크신 분인데 그 순간 선생님의 눈은 얼굴을 다 뒤덮을 만큼 켜져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셨지만 더 뭐라고 하시지는 않았다.


생활 통지표를 그려서 내기는 했지만 그곳에 1학기 성적은 적혀 있지 않은 백지다. 2학기를 마치고 그것을 받았을 들었을 때 내가 그려낸 와 그 생활 통지표 위에 선생님의 글자로 새겨진 성적이 또다시 나를 비웃 기리도 하는 듯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학교에 여유분 양식이 많이 있을 텐데 선생님이 굳이 내가 만들어 낸 생활 통지표를 사용하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은 아녔을까? 생활 통지표 위에 쓰인 성적은 내가 만든 양식만큼 생활 통지표만큼 창피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생활 통지표는 부모님께 쥐어져야 했고 그 여름날의 오락실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하던 나를 다시 상기시키게 만들었으며 싸늘한 겨울바람처럼 나를 쌩하게 스쳐 지나면 나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픈 추억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 하나 있다. 어디를 가도 내 물건을 나와 떨어진 거리에 혼자 내버려 두는 일을 하지 못한다. 요즘 세상에 가방을 훔쳐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나에게 그 어린 시절의 쓰라린 기억은 트라우마와 같이 자리 잡고 있어 늘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는 편이다.



Image by Sourabh yadav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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